이해찬 국무총리가 양양 산불이 일어난 식목일 골프 행각에 국회서 정중히 사과해 파문을 잠재웠다. 이 총리는 “국민에게 사과한다” “근신하겠다”고 말함으로써 칼날을 세워 질책에 나선 야당 의원들을 오히려 맥빠지게 만들었다. 고위 공직자의 골프 행각이 종종 말썽을 빚는 것은 골프 자체가 지닌 사회정서의 위화감 때문이다. 흔히 골프를 이젠 대중스포츠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골프 한 번 치는 데 10만원 짜리 수표 너댓장이 나가는 귀족형 스포츠를 즐길 대중은 아직 없다. 장비를 갖추는 데만도 수백 수천만원이 든다.
같은 공무원이라도 중·하위 공무원은 이래서 엄두도 못낸다. 고위 공직자일 지라도 제돈 내고 골프 치는 예는 거의 볼 수 없다. 골프회동을 상납받기가 일쑤다. 제돈 내고 치는 것 같아도 월급이 아닌 업무추진비로 충당한다. 고위 공무원이 아닌 정치인의 골프 행각 역시 마찬가지다. 공직자의 골프 행각은 이래 저래 국민사회의 거부감을 사고 있다. 여기에 적절치 않은 시기에 골프 행차에 나서 더욱 말썽이 되곤 한다. 큰 비가 내려 홍수가 나거나 가물어 대지가 타는 판에 골프를 즐기기도 하고 큰 사건 사고가 나 야단인 데도 한가하게 골프를 해 말썽이 된 예가 적잖았다.
이번에 이 총리 또한 양양 산불로 동네가 불타는 등 아비규환이 벌어진 판에 ‘굿 샷’을 즐기며 노닥거렸으니 입이 열이라도 할 말이 있을 수 없게 됐다. 물론 그가 산불이 그토록 크게 난 줄 알면서도 골프를 쳤다고 보진 않는다. 하지만 공휴일인 식목일을 골프나 치는 날로 여겼던 것 부터가 잘못된 인식이다. 그리고 산불 보고의 전후 사정이 어떻든 결과적으로 총리로서 지극히 부적절한 처신이 되고 말았다.
국회에서 야당 의원 질의를 되받아 치기로 소문난 그가 식목일 골프 질책만은 고분 고분하게 고개를 숙인 건 염치를 좀 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강조하고 싶은 건 누구든 제 돈으로 골프 칠 형편이 못되면 아예 골프를 치지 말라는 것이다. 굳이 골프가 아니어도 즐길 수 있는 운동은 많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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