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생명

식물과 관련된 주요 상징은 신령스럽다. 참나무는 로마신화에서 으뜸가는 신 제우스의 나무로 여겨졌다. 참나무는 번개에 자주 맞는데 번개는 제우스의 주요 무기이기 때문이다. 자작나무는 러시아에서 여성을 상징한다. 성령강림대축일 직전 숲에서 어린 자작나무를 잘라와 여자 옷과 리본으로 치장했다.

연꽃은 불교 뿐 아니라 힌두교에서도 신성시 했다. 열매가 익는 동안 꽃을 피우기 때문에 스스로 생성되는 우주 창조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장미는 여신들의 상징이었던 것이 이어져 훗날 사랑과 순결, 나아가 성모마리아의 상징이 되었다. 성당에는 장미무늬 창문을 달았다.

마야 문명 권에서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존재로 숭배된 세이바나무는 유사이래 세계 곳곳에서 신의 메시지를 중개하는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맨드레이크는 뿌리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므로 유럽에서 악마의 식물로 여겼다. 그래서 맨드레이크를 뽑아낼 때 악마가 비명을 지른다고 믿었다.

고대 인류에게 나무는 때로 신의 자격에 합당한 외경의 대상이었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경외심을 일으키는 나무는 전나무였다. 성자 보니파키우스가 이교도의 성지에서 신성시 되는 참나무를 베자 그 곳에 전나무가 자라났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오늘날에도 성탄 시즌마다 유럽에서만 2천만 파운드(약 400억원)어치의 전나무가 크리스마스트리로 사용된다.

고대의 왕들은 나무(숲)와 깊이 관련돼 있다. 단군의 아버지 환웅(桓雄)이 태백산의 박달나무(神壇樹) 아래로 왕림하였고, 어린 혁거세 부부가 성장한 곳이 경주 남산의 서쪽 기슭 숲속(昌林)이다. 경주 김씨 시조인 김알지가 계림(鷄林)의 숲속에서 발견되고, 또 그래서 신라가 따로 ‘계림’이라 불렀다는 것은 나무를 신성시했기 때문이다.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렸지만 실은 천상(天上)의 종족이라고 믿었다.

옛날 인류는 ‘정령이 깃든 식물들을 학대하면 천벌이 내린다’고 믿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구상에서 식물들이 학대를 받고 있다.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숲이 사라지고, 산불로 수백 년 살아온 삼림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한다. 그래도 봄철이면 초록 생명들이 탄생한다. 산에 들에 가득한 초록 생명들이 참으로 눈부시게 아름답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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