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의 반일감정

1931년 9월18일 심양 북방의 만철선로를 일본군이 폭파하고는 중국군의 소행이라고 우겨 전쟁을 일으킨 것이 제1차 중일전쟁(만주사변)이다. 일본은 대륙(중국) 침략의 계기로 삼은 이 전쟁에서 수개월 내에 지금의 요령성 중심인 동북부를 점령, 이듬해 3월1일 그들의 괴뢰정부를 세운 것이 이른바 만주국(滿洲國)이다. 제2차 중일전쟁 역시 일본군이 간계로 일으켰다. 1937년 7월7일 일인이 피살된 노구교사건을 자기들이 꾸며 만들고는 중국군의 소행이라며 전쟁을 도발했다. (이를 일본 교과서는 지나(支那)사변이라고 하여 여전히 중국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일본군은 당시 중국 전역을 석권하려 했으나 중칭(重慶)으로 천도한 중국의 끈질긴 항전으로 1941년 12월8일 제2차세계대전으로 확전됐다.

이에앞서 중일전쟁을 일으킨 그해 12월13일 일본군이 난징(南京)을 점령, 입성하면서 약탈과 함께 30만명의 중국인을 학살한 것이 난징학살사건이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은 난징학살사건은 사실이 아니다고 우기고 있다. 마치무라(町村) 일본 외상은 심지어 독일의 유대인 학살과 비교하지 말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중국 인민들의 반일시위가 격화되고 있는 덴 일본 위정자들의 망언과 함께 이런 역사적 배경이 깔려 있다. 시위는 베이징 상하이 뿐만이 아니고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대륙 전역에 확산되면서 고이즈미(小泉) 일본 총리와 일장기 화형식, 가두행진 등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일본인 식당 등이 문을 닫고 일본인의 중국 여행이 잇따라 취소되는 가운데 중국인들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또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중국인들은 공안 당국의 시위 주도자 구속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강도높게 규탄하고 있다. 하지만 좀더 깊게 보면 섬나라인 일본의 대륙 진출에 발판이 됐던 청일전쟁(1895년) 패배에 대한 (대륙인 자기네들의) 자존심이 상한 감정도 작용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조선에 이은 중국 침략을 미화했던 이른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의 망상을 지금도 못버리고 있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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