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를 나가라’

2011년, 일본은 경제가 파탄에 빠지고 외교적으로 완전히 고립된다. 2000년대 중반 달러화가 폭락하고, 2007년 미국이 중동정책 실패를 선언하면서 미국의 힘이 급속히 약해지자 미국만 바라보던 일본 역시 국제 정치·경제적으로 쇠락한 탓이다. 2009년 대선에서 미국 민주당이 승리하고 중국의 힘이 커지자 미국은 일본에 등을 돌리고, 동북아에는 미국, 중국, 러시아, 남북한 중심의 공동안보체제가 정착된다. 이에 일본에서는 실업자와 홈리스가 쏟아지고, 물가는 치솟으며, 흉악한 범죄가 잇따른다. 한편 미국정부의 대북 회유책이 성공을 거두면서 북한에선 개혁파가 대두하고, 자연스레 남북한 통일기조가 조성된다.

그러나 미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을 반대하는 중국은 민주적인 친중국 북한정부 수립을 꾀한다. 이때 북한의 개혁파가 ‘반도(半島)를 나가라’는 작전을 세워 ‘반란군’을 가장한 군대로 일본의 본토를 공격한다. 북한의 최고 엘리트 9명으로 구성된 특수부대가 프로야구 개막전이 열리는 규슈(九州) 후쿠오카 돔을 무력점검하고, 2시간 뒤 484명의 특수부대가 옛 소련제 특별수송기를 타고 도시로 들어온다. 일본 정부와 각료가 아무 대응도 못하는 사이 후쿠오카(福岡)시는 북한군의 수하로 들어가고, 북한군은 8개 군단 12만명이 일본 본토로 진주하는 마지막 3단계 작전에 들어간다.

일본의 대표적인 소설가 무라카미 류의 신작소설 ’반도를 나가라’의 배경이다. 류는 아쿠타가와 수상작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69’ 등 많은 베스트셀러를 내놓으며 영화감독, 화가, 사진작가 등 전방위로 활동해온 소설가다. 일본작가로는 드물게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아 수차례 방문했고 한국방문기를 책으로 내놓기도 했다. 작년 봄에도 한국을 찾았던 무라카미 류는 일본사회에 대한 암울한 전망, 일본의 미국 중심 외교에 대한 비판적 시선, 중국의 아시아 패권 등 나름의 예견을 종합하면서 북한의 잠재적 위협을 이 가상 정치소설 속에 담았다. 일본 도심의 버려진 소년들이 ‘반란군’을 상대로 폭탄·생물전을 벌이고 이들을 일본 열도에서 몰아내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이 소설은 한·일 양국의 최근 정세와 맞물려 미묘한 호기심을 품게 한다. 실제로 북한과 일본이 전쟁을 한다면 어느 쪽이 승리할까.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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