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민당은 쑨원(孫文)의 삼민주의 표방아래 1919년에 창당됐다. 지금은 타이완 정부의 야당 신세가 됐지만 중국 국민정부의 오랜 집권당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은 1921년 상하이에서 있었던 공산당 창립대회 당시 후난(湖南)성 대표로 참가했다.
1차국공합작(1923~1927년)은 북방의 군벌과 그 배후의 제국주의 열강에 대항키 위한 정치적 제휴였다. 그러나 북벌을 마친 장제스(蔣介石)는 반공 우파 쿠데타를 감행, 새로운 국민당 정부로 난징(南京)정부가 들어서 1차 국공합작이 깨지면서 공산당은 불법화 됐다. 이에 공산당은 마오쩌둥을 지도자로 장시(江西)성을 거점으로 하는 중화소비에트를 세워 난징정부에 대항, 10년에 걸친 국공내전이 전개됐다.
2차국공합작(1937~1945년)은 일본의 대륙 침략에 대항하기 위한 국공내전의 종식이었다. 이같은 ‘항일민족통일전선결성협정’이 있었던 덴 시안(西安)사건이 극적 배경이 됐다. 1936년 12월12일 공산군 토벌 독려차 시안을 찾은 난징정부의 장제스를 주둔군 사령관 장쉐량(張學良)이 감금해버렸다. 장제스는 석방됐으나 이것이 ‘내전반대’ ‘일치항일’의 분위기를 성숙시켜 국민당과 공산당이 재차 손을 잡은 것이 2차 국공합작이다.
그러나 1945년 8월15일 일본의 2차 대전 패망이후 다시 시작된 국공내전은 1949년 국민당 정부군이 공산당 인민해방군에게 밀려 타이완으로 패주한 그해 10월 마오쩌둥을 초대 주석으로 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3차국공합작 기운이 돌고 있다. 2차합작이 깨진 지 60년 만이다. 렌잔(連戰) 타이완 국민당 주석을 맞이한 중국 대륙은 환영 일색이다. ‘양안의 공영’을 내건 렌잔 국민당 주석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주석과 국공수뇌회담을 가졌다. 독립을 주장해온 천수이볜(陳水扁) 타이완 총통의 렌잔 국민당 주석 외환죄 거론은 흥미롭다. 보수정당인 국민당이 합작을 도모하고 진보정당인 민진당이 반대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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