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지폐에서 여성이 처음 나온 것은 1962년 5월 16일 발행된 100환짜리 지폐다. 이 지폐의 오른쪽 부분에는 한복을 입은 어머니와 아들이 저금통장을 들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권력자가 아닌 보통 사람이 그려진 지폐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지폐는 1962년 6월 12일 단행된 3차 통화조치로 20여일 동안만 유통되다가 아쉽게 사라졌다. 현재로서는 화폐에 여성이 등장한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한국은행이 내년 상반기에 새 5천원권을, 2007년 상반기에는 새 1만원권과 1천원권을 발행하겠다고 밝혔다. 크기를 줄이고 색상을 바꿔 세련미를 더하고, 위변조 방지기능도 보강하겠다고 한다. 1983년에 나온 지폐가 20여 년만에 모두 개선될 것 같다. 한국은행은 새 지폐를 빨리 만들어 위폐 확산을 막고 지폐에 들어갈 인물 변경에 따른 국론분열을 피하기 위해 세종대왕, 이율곡, 이퇴계의 도안은 그대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화폐는 그 나라의 문화와 정서, 기술력 등을 한 눈에 보여주는 대표적인 국가상징물이다. 외국인 손에도 들어가는 ‘무언의 외교관’이다. 화폐 인물 교체가 재고돼야 한다.
외국의 경우 자국의 화폐에 등장하는 여성으로는 이탈리아 의학자 몬테소리, 노르웨이 음악가 플라그스타, 스웨덴 노벨문학상 라겔뢰프 등이 있다. 프랑스는 폴란드 출신으로 프랑스인과 결혼한 과학자 퀴리를 택했다. 일본도 지난해 새로 발행한 5천엔권에 여류소설가 히구치 이치요를 넣었다.
최근 선구적인 여성운동 또는 독립운동에 헌신한 6명의 여성을 화폐에 넣자는 주장이 여러 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부모를 잃고 기생으로 전락했다가 객주집에서 큰 돈을 벌어 굶주린 제주도민들의 배를 채워준 ‘최초의 여성사업가’ 제주 의녀 김만덕, ‘한국의 잔다르크’ 유관순, ‘여성 정치의 시조’ 선덕여왕, ‘여성해방 운동의 대모’ 이태영, ‘조선시대의 페미니스트’ 허난설헌, 독립운동가 김마리아 등이 지폐의 인물로 거론된다. 신사임당은 항상 거론돼 왔다.
화폐에 여성을 등장시키는 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일이다. 안 될 이유가 없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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