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이순신’이라고 할 수 있는 호레이쇼 넬슨 제독은 1758년 영국 노퍽 버넘소프의 목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외삼촌의 소개로 해군에 입대한 넬슨은 21세 때 프리짓함 함장에 기용돼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함으로써 영국 해군사상 최연소 함장 기록을 세웠다.
이후 10년 간을 대부분 서인도제도에서 근무한 넬슨은 1793년 나폴레옹이 지배하는 프랑스와 전쟁이 발발하자 지중해 함대로 전근됐다. 나폴레옹군과 싸우면서 넬슨은 자신의 명성을 한껏 드높였다. 하지만 1794년 코르시카섬을 점령하는 전투에서 한쪽 눈을 잃었으며, 1797년 테네리페 전투에선 오른쪽 팔까지 잃는 큰 부상을 입었다. 1801년 넬슨은 발트해 함대의 부사령관으로 하이드 파커 경의 지휘 아래 덴마크 해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승리했다. 당시 전투 와중에 파커 경은 넬슨에게 후퇴 신호를 보냈지만, 넬슨은 전투를 계속하는 과감성을 보였다. 결국 넬슨이 후퇴하지 않고 버틴 덕택에 영국은 큰 승리를 거뒀으며 넬슨은 자작 칭호까지 받았다.
1803년 지중해 함대 사령관이 된 넬슨은 프랑스 함대를 봉쇄하며 줄기차게 몰아붙였다. 1805년 영국의 해상 봉쇄를 벗어난 프랑스 해군은 스페인 함대와 합류, 그해 10월21일 트라팔가르에서 넬슨과 역사적인 해전을 치렀다.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는 33척, 영국 함대는 22척으로 함정 수에서 차이가 났지만 전투는 넬슨의 작전대로 진행됐다. 이 결과 영국 함대는 19척의 적함을 격침 또는 나포한 반면, 단 1척의 함정만 잃었을 뿐이었다. 트라팔가르 해전에서의 패배로 나폴레옹의 영국 침공 야망은 완전히 좌절됐지만 넬슨은 “신에게 감사한다. 나는 내 임무를 다했노라”는 말을 남기고 전사했다. 그런데 넬슨의 삶 가운데 아이들을 생각하여 영국 역사 교과서에서 삭제된 부분이 있다. 정치적 격랑 속의 처신과 부적절한 사생활이다. 그렇다고 지금 영국 사람들은 넬슨을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추앙한다.
한국 이순신 장군은 전쟁이 끝나는 날 적탄에 가슴이 관통되어 죽어가면서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이순신은 전 생애를 통해 한 점 티끌이 없었다. 이것이 넬슨과 이순신의 차이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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