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혈(臍帶血)’은 태반이나 탯줄에 들어 있는 혈액이다. 제대혈 속에는 피를 만드는 조혈 모세포가 풍부하고 연골과 뼈 근육 신경 등을 만드는 줄기세포도 있어 냉동 보관해 두었다가 필요한 시기에 녹여서 다시 사용한다. 특히 골수를 구할 수 없는 백혈병 환자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으로 제대혈이 사용되고 있으며 자신은 물론 가족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도 활용된다.
그런데 일부 산부인과 개원의들이 산모의 동의를 얻지 않은 채 신생아 분만 과정에서 무단 채취한 제대혈을 제대혈은행에 판매하거나 연구용으로 넘기고 있는 사실이 알려졌다. 예를 들어 A산부인과의 경우 제왕절개를 선택한 산모가 제대혈과 관련해 먼저 의사를 표명하지 않으면 마취 상태에서 제대혈을 임의 채취했다. 자연분만 때는 산모가 의식이 있어 임의 채취가 힘들기 때문에 제대혈을 어떻게 처분할지를 물어 그에 따른다. 병원측은 이렇게 채취한 제대혈을 비닐 팩에 담아 15만원 내외에 B제대혈은행(탯줄은행)에 팔았다. A산부인과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10일까지 제왕절개를 선택한 177명의 산모로부터 제대혈을 임의 채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제대혈은행으로 넘겨진 제대혈은 배양 등을 거쳐 보관되며 실험용으로 사용되거나 소아암· 백혈병 등의 치료에 쓰이는데, 환자가 백혈병 등의 치료를 위해 자신의 신체 조직에 맞는 보관 제대혈을 구입하려면 1천만원 정도가 든다. 하지만 산모가 제대혈 보관을 원할 경우엔 자신이 선택한 제대혈은행에 150만원 내외의 보관료를 내고 맡기면 된다. 15년 이내에서 사용권과 소유권을 인정받는다.
문제는 산모의 동의 없이 개인의 유전정보가 담긴 제대혈이 빼내져 팔려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제대혈 재활용과 관련한 법적 제도적 근거가 없고, 제대혈 임의 채취를 처벌할 마땅한 근거도 없는 실정이다.
제대혈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서울대 수의대는 “불투명한 유통경로를 거친 제대혈이 그대로 치료용으로 사용된다면 에이즈나 간염 등에 감염될 우려가 있고 또 유전적인 질병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연구에 필요한 제대혈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하니까 정부는 관련법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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