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광고

오늘날 광고를 ‘자본주의 꽃’이라고 하지만 100년전 일제강점기에서 광고는 벌써 꽃을 피웠다. 1920년 기생들의 단체인 ‘경성오권번연합’은 ‘매일신보’에 기생 서비스 요금을 정액제로 바꾼다는 광고를 냈다. ‘한시간에 1원30전, 세시간 반에 4원30전…’식이다. 기생들이 출입하던 요릿집에서는 정초에 ‘근하신년’ 광고를 통해 손님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광고에는 요릿집 소속 기생들의 얼굴 사진, 나이, 주소가 나란히 실렸다. ‘가정을 화목하게 하는 벗’이란 뜻의 ‘가정화합지우’라는 제목의 광고에서 이어지는 글귀는 ‘방독미감’이다. 매독을 방지하고 느낌이 좋다, 즉 콘돔을 소개하는 광고다. 근엄했을 시절 같지만 표현은 지금보다 더 적나라하다.

식민지 시기 최대 히트상품 고무신 광고에는 왕실까지 동원됐다. “대륙고무가 제조한 고무화의 출매함이 이왕 전하께서 어용하심에…”(대륙고무신), “이강 전하(순종 동생인 의친왕) 께서 손수 고르셔 신고 계시는…”(만월표고무신) 등 고무신 회사 간의 광고가 치열했다. “강철은 부서질지 언정 별표 고무는 찢어지지 아니한다”는 비장하면서도 허풍 섞인 광고를 때린 곳은 별표 고무신회사였다.

‘영어는 출세의 자본, 입신의 기초부터 영어를’이라는 문구는 요즘 것이라해도 어색하지 않다. 코가 뭉개진 여성을 모델로 삼은 성병약, 자양강장제라고 내세운 초콜릿, 술이 아니라 청량음료라고 우긴 맥주, “치마 사면 영화 공짜”라며 영화표를 내걸고 여성들을 유혹한, 라이온치마의 광고도 흥미거리다.

일제 강점기 신문광고에서 가장 화려하게 등장했던 이는 마라톤 선수 손기정이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한 손기정과 3위에 오른 남승룡은 인단·치약·약품 등 거대 광고주가 서로 잡으려고 애쓰는 최고의 인물이었다. 일간지 기자 출신 김태수씨가 쓴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는 책에 나오는 광고 이야기들이다. 한성순보, 독립신문 등 한말의 신문에서 매일신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강점기에 이르는 신문과 학지광 청춘, 개벽, 별건곤, 신여성, 소년 등의 잡지에 등장한 광고를 샅샅이 뒤져 역사와 풍물을 소개, 일독할만 하다. 광고내용을 보면 그때가 강점기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여서 일제의 간교한 회유책이 아니었나 싶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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