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를 왜곡시키는 방송언어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를 꼽는다면 ‘너무’를 꼽을 수 있다. 부사 ‘너무’를 어법에 어긋나게 긍정문을 강조하는 데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요즘 KBS·MBC·SBS 등의 쇼·오락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방송 중 ‘너무 예쁘다’ ‘너무 아름답다’ ‘ 너무 멋있다’는 등 잘못된 어법을 예전보다 더 많이 쓰고 있다. 마치 일부러 더 그러는 듯한 당치 않은 생각마저 든다.
출연자는 그렇다치고 언어순화에 앞장서야 할 사회자와 아나운서들까지 잘못된 흐름에 가세하려는 듯 ‘너무’소리를 남발하고 있는 모습은 보기에도, 듣기에도 좋지 않다. 왜곡된 단어를 자꾸 쓰면 격이 떨어져 실망하게 된다. 온라인에서는 더욱 확산돼 ‘너무’를 아예 ‘넘’으로 축약해 쓴다. 시사토론에 나온 소위 명사들이 ‘우리 나라’를 ‘저희 나라’라고 말하는 것도 못 볼 것 가운데 하나다.
주지하다시피 부사어(副詞語) ‘너무’는 ‘비가 너무 왔어요’ ‘눈이 너무 내렸어요’ 처럼 ‘한계나 정도, 표준에 지나치거나 못 미치게’란 뜻으로만 써야 한다. ‘장동건 형 너무 잘 생겼다’ ‘이영애 언니 너무 예뻐요’ 처럼 강조의 의미일 때는 ‘너무’ 대신 ‘참’ ‘매우’ ‘아주’로 써야 옳다.
강조나 비교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이 ‘참’ 따위의 부사로는 강조하는 데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 나머지 부정적 의미인 ‘너무’를 무분별하게 끌어다 쓰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방치할 경우 언어의 원뜻조차 훼손될 우려가 크다.
부사어 ‘별로’처럼 실제 단어의 원뜻 자체가 변해버린 사례도 적지 않다. ‘별로’는 원래 ‘특별하다’는 뜻이었으나 70년 전 신소설기 이후에는 ‘별로 맛이 없다’처럼 쓰임새가 부정적으로 바뀌고 말았다. ‘심청전’에 심봉사가 딸 심청에게 음식을 차려주면서 “이 음식이 별로(특히) 맛있구나”란 긍정적 표현이 나오는데 신소설기 이후 고난의 역사를 거치면서 특별한 것이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일이 많아져 용례와 어법이 바뀐 듯 하다.
우리 말을 올바르게 사용케 하고, 저질 언어를 추방하는 데는 방송국 만한 곳이 없다. 국어 보존 차원에서 앞으로 방송이 적극 나서서 잘 못 쓰이고 있는 언어 용례와 어법을 바로 잡아야 한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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