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호전세력들에 의한 한반도의 6월 위기설을 작금의 남북대화로 보기 좋게 날려버렸다. 여기서는 이러한 평화 분위기를 살려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체제의 주류문화인 서구 기독교 사상과 북조선의 고유문화인 주체사상과의 대화를 통하여 생명주의를 지향하는 다문화 통일론을 제시함으로써 민족의 평화통일의 계기를 마련하는 데 목적이 있다.
북·미간의 끝없는 대치와 갈등은 정치적 이슈로 포장된 문명의 갈등으로 근본적으로는 동·서양의 문화적 충돌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정부는 북의 주체문화를 근본적으로 악의 근원으로 보고 있다. 미국이 북을 ‘악의 축’이라고 하였을 때 ‘악’의 개념은 단순히 정치적 체제나 이데올로기의 모순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적 개념에서 판단된 ‘악’의 개념으로 지극히 종교적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양국간 갈등의 요소가 문화적이고 정신적일 때 갈등의 해소와 치유는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신은희 박사가 소개하는 테일러의 ‘인식의 정치’는 대화적 과정 (dialogical process)을 통한 정체성의 변화과정을 뜻한다. 인식의 정치가 실패하고 문화적 충돌이 야기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문화의 정체성이 대화의 형태가 아니라 독백의 형태로 형성되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미국이나 북조선은 둘 다 독백적 문화의 정체성만을 강조하여 왔다. 미국은 기독교적 가치를 기초로 개인적 인권을 중심으로 하는 정체성을, 북조선은 주체중심의 민족주의 공동체 중심의 정체성을 각각 배타적으로 주장하여 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체사상의 종교화 과정을 이해한다면 주체사상과 기독교와의 상호적인 대화는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정치적 이념으로 출발했다가 종교화 과정을 거쳐 고유문화로 남아 일종의 민족적인 국가종교로 유지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주체사상은 1950~60년대 중국과 소련의 반사대주의 개념으로 형성되어졌다. 문화적 사대주의에 관한 문화적 대응으로 북조선은 ‘주체’라는 정치이념을 고안하였다. 1990년 이후부터는 이러한 생명체개념을 중심으로 주체사상은 정치적 차원을 훨씬 넘어 본격적인 종교성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제 어떤 사상이건 철학이건 사상적 변종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대상이다. 어떤 사상의 퇴화와 변화 재창조의 과정은 모든 철학세계에서도 공동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기독교와 주체사상은 모두 끊임없는 자기 개혁과 내부적 수정을 거쳐 21세기 포스트모던 시대에 어울리는 고유문화로서 세계화의 관점에서 다원문화와 생존의 소수문화로서 재구성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다원화과정을 거쳐 북도 수령중심의 생명체 이론이 아닌 인민중심의 주체사상을 회복시켜야 할 과제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두 전통이 각각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내적 문화화하는 과정을 거쳐 만날 수 있는 사상적 접맥은 생명사상일 것이다. 생명운동으로서의 통일 운동은 전체 속에서 부분을 조명할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한다.
생명주의라는 연대 속에 다양한 표현양식이 허락되는 다문화적인 모자이크의 통일문화는 미국중심의 기독교 근본주의가 주장하는 용광로 통일 문화가 아니라 동북아 균형국가로서 세계의 모든 고유문화와 소수문화가 만날 수 있는 미학적 평화의 문화가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바로 이러한 통일 문화다원주의로 하여 ‘인식의 정치’를 창출함으로써 비로소 민족의 평화통일에 한발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노 태 구 경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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