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루이 14세는 왕권신수설로 중앙집권을 강화한 반면에 프랑스 문화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당시 문화의 중심지가 베르사유 궁전이다. 선왕의 별궁이던 것을 본격적으로 개조했다. 1664년에 시작하여 50년만인 1714년 호화 장려한 대궁전을 완성했다. 재위 72년의 약 3분의 2를 궁전 증·개축으로 보냈다. 후세에 제1차 세계대전 강화조약 등이 베르사유 궁전에서 체결됐다.
루이 14세는 궁전에서 무도회를 자주 즐겼다. 이 호화무도회엔 귀족 귀부인 등 국내외의 상류층이 대거 참가하곤 했다. 하루는 목에 댕기같은 천 조각을 감고 나타난 사람이 있어 이를 색다르게 본 왕이 “저 사람이 목에 두른 게 뭐냐”고 물었다. 시종무관은 어디서 온 사람이냐는 물음인 것으로 알고 “크로아티아(croatia)에서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루이 14세는 이튿날 자신도 목에 댕기를 감고 나타나자 다음부터는 무도회에 참석하는 모든 남자들이 다 목에 댕기를 매고 나왔다. 이것이 오늘날의 넥타이 효시다. 프랑스어로 넥타이를 크라바트(cravate)라고 하는 것은 크로아티아에서 유래된 말이다. 크로아티아는 지금의 유고 연방 서북부 지역이다.
일본에선 올 여름에 넥타이가 수난을 당하고 있는 모양이다. 넥타이 업계의 매출액은 30%나 떨어지고, 대신 노타이 와이셔츠 매출액이 30~40%나 오른것으로 전한다. 에어컨을 덜 틀기 위해서는 노타이 차림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넥타이를 풀면 체감 온도가 2도 가량 낮아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고 보니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는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모습에서 넥타이 차림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 같다.
정부도 공무원들에게 정장이 아닌 평상복 차림을 하게 한다는 말이 있더니 뒷소식이 없다. 넥타이는 여성들도 더러 한다. 하지만 남성의 정장으로서는 필수품이다. 공식 석상이나 점잖은 자리엔 넥타이를 매는 것이 예의다. 국내에서는 일본과의 강화수호조약 이후 고종 18년(1881년) 박정양 등이 신문화를 받아 들이기 위해 일본에 간 ‘신사유람단’이 처음 맸던 것으로 전한다. 에너지 및 대기오염 대책의 일환으로 넥타이가 수난받는 시대상 변천이 남의 일 같지 않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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