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1984년 미국에서 ‘그레고리 존슨 사건’이란 게 있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재선 반대 시위를 벌이던 그레고리 존슨이라는 청년이 성조기(星條旗)를 불태운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었다. 그는 “눈길 한번 안 주는 언론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미 법조계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처벌 찬성론자는 “표현의 자유는 존중하나 국가 상징물인 성조기를 훼손한 것은 미국 정신에 대한 도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성조기의 상징성을 인정하니 태우는 것이다. 미국의 가치를 실제로 위협하지 않는 상징적 행위일 뿐”이라고 맞섰다. 연방대법원은 1989년 그레고리 존슨의 손을 들어줬다. 성조기 훼손은 정치적 견해를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 헙법 제1조의 보호대상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지난 6월 22일 미국 하원은 “성조기를 불태우면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찬성 286표, 반대 130표로 의결정족수(3분의 2)를 조금 넘겼다. 미 하원은 1989년 그레고리 존슨의 성조기 방화사건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 이후 이를 불법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4차례 통과시켰지만, 번번이 상원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상·하원의 동의가 있더라도 개헌을 위해선 50개 주 의회 가운데 4분의 3인 38개 이상의 주 의회가 비준하는 절차가 남아 있지만, 9·11테러 이후 막강해진 미국의 애국주의 기류와 최근의 보수화 정서가 맞물려 ‘성조기 훼손 처벌’이 통과될 것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이라고 한다.

워싱턴 정치권에서 톰 들레이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젊은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성조기를 불태우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에 포함될 수 없다”고 확실히 말했고, 2008년 대통령선거의 유력한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드물게 발생하는 훼손사건 때문에 개헌까지 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십자가를 불태우는 것을 불법화한 것과 같은 이유로 처벌법을 만드는 것은 무방하다”는 입장에 있다. 미 정치권에 애국주의 바람이 불고 았느 것이다. 혹 우리나라 법원이나 국회 어느 정당에서 “태극기를 불태우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고 황당한 주장을 할까 봐 걱정이 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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