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대한제국(大韓帝國)은 1897년 8월12일부터 1910년 10월22일까지 13년동안 존속하였던 조선 왕조의 국호다. 청나라와의 종속 관계를 떠나 자주 독립국가를 표방한 것이 이같은 국호 변경이다.

처음 이 운동이 시작된 것은 고종21년(1884년) 급진개혁파가 주도한 갑신정변에 의해서다. 청나라에 대한 조공을 폐하고 군주를 대군주, 전하를 폐하, 과인을 짐으로 바꿨으나 집권세력인 김옥균 등이 3일천하로 끝나 실패했다.

이로부터 10년 후 갑오경장이 일어나 김홍집 내각이 들어서면서 ‘홍범14조’를 공포, 군왕을 중국 황제와 대등한 황제 지위로 올려 1896년 1월에 ‘건양’(建陽)이라는 연호를 썼으나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반대로 오래가지 못했다.

다시 칭제건원(稱帝建元)이 추진된 것은 고종이 아관파천(俄館播遷)에서 1년만에 환궁한 1897년이다. 개화파와 수구파가 연합하여 이 해를 ‘광무’(光武) 원년으로 하고 같은해 10월12일에는 고종이 문무백관을 거느린 황제 즉위식을 거행했다. 이때 세계 만방에 새로운 국호를 선포한 것이 대한제국이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의욕뿐, 힘이 없는 제국이었다. 일본과 러시아 등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시달렸다. 일본은 마침내 1906년 서울에 ‘통감부’를 두어 침략의 마수를 노골적으로 뻗쳤다. 경술국치인 이른바 ‘한일합병조약’이라는 것을 강제로 체결해 대한제국이 멸망하면서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36년동안 받게 되었다. 이날이 순종(純宗) 융희(隆熙) 4년인 1910년 8월22일이다.

지난 24일 창덕궁 낙선재 빈소를 떠나 남양주시 영원(英園)에 안장된 이구(李玖)씨는 이런 비운의 제국의 마지막 황세손이다. 그의 아버지 이은(李垠) 공은 후사가 없었던 순종의 동생으로 황세자였다. 그러므로 황세손에겐 순종이 큰아버지가 된다.

힘이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힘없는 나라가 생존할 수 없는 건 아직도 변함이 없는 동서고금의 이치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세손을 보내고 갖는 이런 소회가 새삼 가슴에 와닿는다.

/임양은 주필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