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이 1979년 8월 24일 매립면허를 취득한 후 15년 3개월 만인 1995년 8월 14일 준공한 서산간척지 사업명은 ‘서산 A·B지구 간척 농지조성사업’이었다. ‘국토확장 및 간척농지 조성, 식량증산 및 자급률 제고, 농산물 증산에 의한 수입대체, 소득증대로 국민생활 향상 및 안정, 수자원 확보’라는 사업목적이 말해주 듯 농업위주였다.
서산간척사업이 처음으로 구상된 것은 현대건설 해외건설이 절정에 이르고 있었던 1977년 이었다. 농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국내실정에서 민간기업의 간척사업 참여는 필수적이라는 판단 아래 간척사업의 당위성을 정부에 건의하여 실현된 것이다. A지구 매립공사는 세계 건설사상 최초로 유조선을 이용한 물막이 공법을 사용했다. 4천700만평에 달하는 서산농장에서 벼를 수확하여 식량증산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데, 앞으로 현대건설과 충남 태안군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기업도시가 서산간척지 B지구 473만평 농지에 세워진다고 한다.
전체 부지의 절반이 넘는 260만평 규모의 골프장을 만들고 나머지에는 생태체험공원과 숙박시설, 스포츠 공원, 첨단복합단지 등을 조성할 모양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2011년까지 2조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민간사업이다. 그러나 반대여론이 거세다. 간척지를 개간한 목적이 식량을 생산하려는 것인데 여기에 골프장을 조성한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는 주장이다. 통일 이후 식량자급목표 계획과 이에 따른 적정목표 수준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간척지를 무분별하게 전용하는 것은 식량안보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반대한다. 소규모·분산 농지의 타용도 전용을 억제하면서 대규모 간척지로 조성된 우량농지는 전용을 허용할 경우 향후 농지보전시책에 큰 차질이 빚을 게 자명하다. 문제는 태안지역 주민 중 1만2천여명이 기업도시 유치 찬성에 서명했다는 사실이다.
‘뽕나무 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된다’는 옛말 ‘상전벽해(桑田碧海)’와 바다를 메워 논밭을 만든 것은 직접 봤지만 이제는 간척지가 골프장으로 변할 것 같다.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거쳐 북한으로 가던 정주영 회장이 생존해 계시다면 한 마디로 “안돼!”하고 불호령을 내렸을 것이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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