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유적지 가수동

우리나라에서 고조선 후기부터 사용된 수레가 유물로 확인되는 것은 한사군(漢四郡)인 낙랑(기원전 108 ~313)시대부터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서북한 지역에서 출토된 청동제 굴대투겁과 각종 수레장식, 햇빛을 가리기 위해 마차에 장착되는 목제 일산(日傘)대가리 및 살꼭지 등이 그 증거다. 한반도 남부에선 기원전 1세기 광주 신창동 유적에서 바퀴살이 박힌 바퀴통과 수레채(끌채)에 의해 굴대와 연결되며 수레를 끄는 말의 고삐가 통과하는 가로걸이대(차형·車衡) 등의 수레 부속구가 출토됐다. 대체로 평양지역에선 기원 전 2세기쯤 1개의 끌채에 2필의 말이 끄는 마차가 출현하고 기원전 1세기 이후 좌우 2개의 끌채에 1필의 말이 끄는 형태로 변화하는데 신창동 출토품은 후자에 속한다.

수레의 이용이 활발했던 중국과 달리 우리는 조선후기까지 일반화되질 못했다. 다만 신라와 백제의 왕경인 경주와 부여에서 발견된 도로유구에선 수레 또는 우마차가 빈번히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많은 수레바퀴자국이 확인됐다. 부여 궁남지와 능산리 유적에선 수레바퀴(테)편이 발굴됐으며, 중국 환런(桓仁)시 오녀산성과 구리 아차산 일대 보루(아차산 4보루와 홍련봉 1보루), 양주 대모산성, 이천 설봉산성, 전남 광양 마로산성 등지에서 군수물자를 운반하는 데 사용한 삼국~통일신라시대의 수레에 사용된 차관이 출토됐다.

그런데 최근 오산시 가수동 43번지 일대에서 한성백제와 삼국시대 후기 신라시대의 접시, 국자, 말목, 우물부재, 바가지, 발하목, 쟁기자루, 베짜는 도구 등 350여 점의 목재 유물이 출토됐다. 이 가운데 길이 63㎝, 93㎝의 수레 바퀴테 2점이 들어있다. 이 수레바퀴는 목재로 만든 바퀴를 철판으로 감싼 쇠바퀴와 함께 목재로만 만든 바퀴도 있음을 알게 해준다. 이번에 출토된 목재(참나무) 수레바퀴는 신라시대의 왕이나 귀족이 타고 다닌 수레로 추정된다. 바퀴테에서 목재가 쪼개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철사로 동여맨 자국(홈)이 발견된 것도 철판으로 감싸지 않았다는 증거다. 목재바퀴의 사용은 당시 도로가 자갈길이 아니었음을 추정케 해주는 데 그렇다면 오산 지방은 상당히 발달된 지방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번 목재유물은 경기문화재단 부설 기전문화재연구원(원장 장경호)이 출토했다. 기전문화재연구원의 노고가 실로 크다./임병호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