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 36년은 참 무서운 세월이다. 그 잔재는 36년보다 더한 6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곳곳에 배어 있다. 심지어는 역사관(歷史觀)도 일제 잔재를 면치 못한다. 조선조의 사색당파는 왕조 시대의 고전적 정당정치다. 이를 하릴없는 붕당 싸움으로 비하시킨 것이 일본의 식민지사관이다.
일상 생활에서도 일제 잔재는 부지부식 간에 많다. 예컨대 토목공사 판은 일제용어 투성이다. 이에 종사하는 막벌이 노동자를 일컫는 ‘노가다’는 외래어로 국어대사전에 등재됐을 정도다.
일제는 성명까지 일본식으로 바꾸는 창씨개명(創氏改名)을 강요했다. 일제가 멋대로 지명을 바꾼 창지개명(創地改名)을 바로 잡자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다. 그 예로 광복 60주년 기념문화사업추진위원회가 전라남도에 있는 영산강(榮山江)은 일제가 만든 이름이라며 이의를 제기, 문화관광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이는 일제문화 잔재 제거 사업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영산강은 조선조 영조실록 등 다수의 고문헌과 대한제국 관보에도 나오는 전통 명칭이라는 학계의 이의가 제기되어 문광부 선정이 취소돼야 할 판이다.
인천의 송도(松島)가 일제 지명의 논란에 휩싸였다. 이 역시 문광부가 선정한 모양이다. 일제 지명이라는 주장과 아니라는 주장이 있어 진위를 여기서 단정키는 어렵다. 일제 지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식미지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오욕을 대물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크게 볼 필요가 있다. 분명치 않은 일을 두고 소모적 논쟁을 벌이는 것이 과연 유익한가도 고려할 여지가 있다.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가장 좋은 길은 국력을 키우는 일이다. 우리가 일본에 먹힌 불행한 과거사는 국력이 없었기 때문에 당한 것이었다. 일본보다 더 센 국력을 배양하는 것이 일제 청산은 물론이고 극일(克日)로 가는 길이다. 문광부가 광복 60주년을 맞아 한다는 일제 잔재 청산이 고작 불분명한 지명 소동인 것은 유감이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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