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花鬪)는 19세기말경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쓰시마섬 상인들이 장사차 왕래하면서 퍼뜨렸다는 설이 있지만 누가 어떻게 들여왔는지는 정확지 않다. 아무튼 화투는 국내에 상륙하자마자 급속히 전파돼 사회 상층부 사람들까지도 화투를 가지고 노는 풍조에 휩쓸렸다.
화투는 그림의 내용이 일본 풍속을 따르고 있는 데다 그림의 도안이나 색채도 전적으로 왜색이다. 일제가 화투를 일본문화 전파의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화투용어도 온통 왜색이다. ‘고도리’는 다섯 마리의 새라는 일본말이며 민화투에서 점수가 되는 ‘약’은 일본어의 세금, 부역 등을 의미하는 ‘역(役)’을 일본식(야쿠)으로 발음한 것이다. ‘기리’는 자른다는 뜻의 일본어다. 무산됐다는 일본어 ‘나가레’에서 온 ‘나가리’, ‘고리뗀다’는 ‘고리’는 금품을 받는다는 일본어의 ‘고오리카’에서 온 것이다. 돈을 내지 않고 미뤄두는 ‘가리’는 빚을 뜻하는 일본어이다. ‘짓고땡’ ‘장땡’ ‘구삥’ ‘가보’ 같은 말은 물론 ‘땡잡았다’ ‘삥땅치다’ 등은 아예 관용어처럼 우리 일상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48장의 화투 속에 담겨 있는 그림들도 모두 왜풍이다. 화투패 중 1월, 3월, 8월, 11월, 12월에만 광이 있는 이유는 이 다섯 달이 일본의 대표적인 명절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설날(1월)을 비롯해 벚꽃축제(3월), 오봉제 및 달구경(7, 8월), 어린이 명절(11월), ‘도시코시 소바’라는 국수를 나눠 먹는 세모(12월)가 그것이다. 1월의 소나무는 설날부터 1주일간 집 앞에 꽂아두고 조상신과 복을 맞는다는 일본의 세시풍속을 그린 것이고, 9월 국화는 헤이안 시대부터 9월 9일에 국화주를 마시고 국화꽃을 덮은 비단 옷으로 몸을 씻으면 무병장수한다는 전통의 방식이다. 술잔에 목숨 ‘壽(수)’자가 적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본인이라면 화투를 이용해 놀이를 할 수 있겠지만 온통 왜색문화 일색인 화투를 우리가 계속 쥐고 있어야 하는가 하는 점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투전을 부활시키거나 골패, 윷놀이만 고집할 수는 없지만 화투를 사용하는 ‘고스톱 공화국’ 소리를 듣는 것 만은 피해야 한다. 식구들과 함께 고스톱을 치면서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패도 안 좋은데 죽으세요’라고 말 하는 것은 아무리 놀이라고 하지만 듣기에 좋지 않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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