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시효

미국은 살인죄의 경우 연방법에서 ‘공소시효’를 두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은 지난해 공소시효가 만료된 살인범들이 잇따라 자수해 논란이 일자 공소시효를 15년에서 25년으로 늘렸다. 독일의 살인죄 공소시효는 30년이다. 특히 미국과 독일은 미성년자 성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정지하고 있다. 어린이 성폭력은 성인이 돼서야 피해를 깨닫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감안한 조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는 15년, 무기징역은 10년, 장기 10년 이상의 범죄는 7년이다. 외국에 비하면 공소시효가 너무 짧다. 그래서 덕(?) 보는 사람들이 많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10명이 살해된 ‘화성연쇄살인’ 9차 사건의 공소시효가 11월 14일 끝난다. 10일 후 범인이 나타나 “내가 진범이다”라고 떠들어도 잡아 넣을 수 없다. ‘개구리 소년’ 실종·사망사건 공소시효도 5개월이 채 남지 않았다. 실종 11년 만인 2002년 유골을 발굴해 타살로 잠정결정이 났으나 수사는 사실상 중단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 불법감청을 독려·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임동원·신건 전 국가정보원장이 구속될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김영삼(YS) 정부 시절 국가안전기획부장을 지낸 김덕·권영해씨는 면죄부를 받을 전망이다. 공소시효(5년)가 다 지나 처벌을 피하기 때문이다.

안기부 예산을 여당(민자당)의 선거자금에 전용한 의혹을 다룬 이른바 ‘안풍(安風)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지난 달 28일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로 “1천200억원이라는 거액은 사실상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라는 항간의 의혹이 사법적 절차에 의해 사실로 확인됐다. YS가 1992년 대선 때 기업 등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거뒀다가 1995 ~ 1996년 선거에 사용한 것이라면 법률적으로 정치자금법 위반죄가 적용될 수 있지만 이미 공소시효(3년)가 지나 사법처리는 물론 진상규명도 어렵다. YS가 해명·사과해야 하는데 입을 꽉 다물고 있어 결국 안풍사건은 흐지부지 막을 내리는 셈이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 전 기자단과의 산행 후 “요새 시효제도라는 게 이렇게 부당한 것인지 몰랐다”며 공소시효의 허점을 지적하고 “(당에 쓰라고 1천억 원을 선뜻 내놓은)그 양반(YS) 참 통큰 사람”이라고 말했다. 욕을 한 것인 지, 추켜세운 건 지 헷갈린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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