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프로야구가 생길 때의 일이다. 당시 재벌들이 프로야구단을 두고 싶어서 둔 게 아니다. 전두환 정권의 강압에 의해 창단했다. 실업팀 선수를 갑자기 프로 선수로 바꾼다고 하여 프로야구가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의 지적도 많았다. 그러나 프로야구는 성공했다. 구단의 지역 연고제가 큰 요인이기도 했지만 초창기 프로야구 선수들의 노력이 그만큼 컸다. 처음엔 마지 못해서 시작했던 프로야구단 운영이 스포츠 팬들의 인기를 끌게되자 잇따라 창단을 희망하는 재벌이 나왔다.
이 무렵 88서울올림픽 유치 또한 전두환 정권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 총력전을 펴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정권의 정통성이 떳떳하지 못했던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국민사회의 불평 불만을 스포츠로 희석시키려고 했고 이러한 스포츠정책은 효과를 보았다. 야간 통행금지시간 철폐, 교복자율화 같은 것도 인기 영합을 의도했던 대중요법의 산물이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생긴 프로야구가 벌써 25년의 연륜을 기록하면서 한국프로야구는 반석위에 올랐다. 그런데 요즘 한국야구위원회(KBO)후임 총재를 둔 노무현 대통령의 코드 인사가 시비의 도마위에 올랐다. 박용오 총재(전 두산구단주)가 내년 3월까지의 임기를 못채우고 갑자기 중도 사퇴하더니,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인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이 그 자리에 간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코드인사가 스포츠단체까지 뻗쳐 프로야구도 한참 문외한인 대통령 선배가 KBO 총재가 된다는 말에 스포츠계의 반발이 꽤나 심하다.
노 대통령은 국회 5공청문회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을 군사독재자로 지목하면서 맹렬히 추궁하여 ‘청문회스타’로 떠올랐던 적이 있다. 전두환씨는 노무현 의원이 조목조목 따지는 말에 얼굴만 벌겋게 달아오를 뿐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참, 이상하다. 전두환 정권이 강압적으로 만들었던 프로야구의 KBO 총재로 노무현 정권이 대통령 사람으로 앉히려는 강압적 처사는 25년의 세월을 무상케 한다. 신상우씨는 벌써부터 취임사를 방불케하는 인터뷰를 어느 스포츠신문과 가져 처신에 더욱 빈축을 사고 있다./ 임양은 주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