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부드러웠다
따뜻하기도 했지
사열한 유리진열장을 빠져나와
악수를 청하는 그의 손가락에서는
깊은 사유의 푸른 잉크 냄새가 났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그림 속에서 그가
그리다 만 장닭이 갑자기 일어나
꼬끼오 훼를 치는 바람에 뒤돌아보니
그가 빙긋이 웃으며 떨리는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할 말이 있소
삶이 그대를 속인 적이 있던가요
그래도 노여워할 일이 아니라오
그대에게 이 말을 전해주고 싶었소.”
그때 안경을 썼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검은 색 모자였지 아마
조용히 벗은 모자를 내게 씌워주고는 말없이
시대를 걸어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한동안 온기가 남아 있었다
<시인 약력> ‘문학예술’로 등단 / 시집 ‘그리움을 끌고 가는 수레’, 수필집 ‘로시난테의 오막살이’ 등 다수 / 드로잉 ‘새로운 바람전’, 도 판화 개인전 ‘흙, 바람을 채집하다’ 등 개최 / 한국시인협회·국제펜클럽한국본부 회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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