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동짓달은 밤이 유난히 길다. 황진이는 동짓달 밤을 두고 이런 고시조를 남겼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둘러내어 / 춘풍 이불속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 어루신님 오신날 밤 구비구비 펴리라.’ 여기서 ‘어루신’은 ‘얼다’의 의미어로 ‘교합’을 뜻한다. 당대의 도학자며 풍류객이던 서화담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조다. 송악산 동굴에서 10년이나 면벽(벽을 마주하며) 참선한 지족 선사를 유혹하여 파계케 함으로써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속담을 낳게 한 황진이도 서화담을 유혹하는 덴 성공하지 못했다.
황진이 얘기를 하다보니 고시조 한 수를 더 인용할 생각이 난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었는다 /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누었는다 /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이를 슬어 하노라’ 이 역시 그 무렵의 풍류시인 임백호가 황진이 묘소 앞에서 지은 시조다. 여기서 ‘자는다’ ‘누었는다’는 ‘자는구나’ 누웠구나’ 하는 감탄사가 아니다. 옛글(고어)의 어법상 “ㄴ다” 법으로 ‘자느냐’ ‘누웠느냐’하는 의문사다.
황진이가 독수공방으로 모질도록 길게 느낀 동짓달 밤도 동짓날을 고비로 차츰 짧아지기 시작해 여름철 하지가 되면 한해 중 가장 짧은 밤이 된다. 그러니까 내일 22일 밤은 동짓달 중에도 가장 밤이 긴 동짓날이다. 동짓날은 음력이지만 동짓달 며칠이 동짓날인 지는 지구의 자전에 따라 해마다 다르다. 하지만 양력으로는 어느 해가 되든 12월22일이 동짓날이다.
그래서 음력 동짓달 10일 안에 동짓날이 들면 ‘아기동지’라고 하여 동지죽을 쑤어먹지 않는다. 올 동짓날은 장년과 노년 사이인 음력 21일이므로 동지죽을 쑤어먹는 동짓날이다. 햇찹쌀로 빚은 새알을 햇 팥을 삶아 으깬 물에 쑤는 동지죽은 탄수화물 등이 풍부해 이를테면 겨울철 보양식이다. 전래 풍습은 잡귀를 쫓는다고 믿어 동지죽을 쑤면 집 바깥 기둥뿌리 등 곳곳에 뿌렸다.
동지죽 새알 만드는 것을 거들면서 싫증이 나면 반죽을 빨리 없애려고 크게 만들다가 “그렇게 하려면 그만 두라”는 아내의 핀잔을 듣기도 했다.
동지죽을 먹으면 설을 쇠지 않았어도 벌써 한 살 더 먹은 것으로 치는 걸로 전해진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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