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살인행위

미국의 경우,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면 벌금액이 변호사비 등을 포함해 700만원이 넘는다. 또 음주운전으로 인해 사상자가 생겼을 때는 최고 종신형의 무거운 형량이 뒤따른다. 음주 가능성이 있을 경우 단속경찰 직권으로 유치장에 구금할 수 있는 등 경찰의 권한도 강력하다. 이탈리아는 면허정지자의 경우 아예 차량을 국가가 압수하기도 한다. 프랑스는 2002년 대통령 직속기구까지 만들어 교통경찰의 권한을 강화하고 음주운전을 대대적으로 단속한 결과 7천242명에 달하던 교통사고 사망자수가 2003년에는 5천217명으로 28%나 감소됐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음주운전에 적발되면 벌금이 100만~300만원이다.

음주운전은 뺑소니, 무면허운전과 함께 ‘교통의 3대악’으로 손꼽히는 심각한 범죄행위다. 운전자 본인 뿐 아니라 타인의 생명과 재산까지 위협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교통사고에서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가 차지하는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많은 음주운전자들이 ‘사고만 안 내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음주운전을 가볍게 보는 또 다른 이유는 잦은 ‘사면’이다. 올해 실시된 8·15 특별사면 이후 한 광역시에서 실시한 음주단속에 적발된 운전자의 60%가 사면받은 사람들이었다는 통계가 있다. 하지만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어느 선진국에서도 음주운전자들에 대한 사면은 찾아볼 수 없다. 호주의 경우 사업용으로 등록된 차량을 음주상태에서 운전하다 적발되면 가중처벌을 하고 있다. 생계형 운전자 구제를 구실로 때만 되면 음주운전자를 구제해 주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다.

음주운전 사고자는 ‘저승사자’와 다름 없다. 음주운전자는 사고 때 혼자 죽지 않고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간다. 지난해 음주운전으로 인해 사망한 875명 중 508명(58%)은 지나가던 행인이나 피해차량의 운전자들이었다. 반면 사고로 죽는 음주운전자는 그보다 적은 367명에 불과했다. 음주운전 피해를 막기 위해선 처벌규정이 강화돼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여론이다. 음주운전은 사실상 예비 살인행위다. 사면과 같은 선심성 정책은 음주운전자를 양산해 선의의 피해자를 늘려갈 뿐이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성숙한 시민의식이 동시에 요구된다. 연말을 맞아 발생할 음주운전 사고가 걱정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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