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자서전’은 한 생애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저술한다. 평생이 파란만장했거나 큰 족적을 남긴 명사들이 대부분 과거사를 회고하며 직접 쓰는 게 상례다. 일기나 자료를 중심으로 엮는다. 그래서 읽는 사람들에게 감명을 준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문장력이 부족한 사람은 구술(口述)을 통해 평생을 정리한다. 그래서 전기작가, 또는 대필작가라는 직업이 생겨났다.
정치인들이 자서전을 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저명한 사람은 인세 계약을 하고 정상적인 출판을 한다. 어느 정도 팔릴 것이라는 계산이 나오는 경우다. 서울시장에 출마하려고 책을 낸 한나라당 홍준표, 박진 의원은 이 경우다. 두 의원이 낸 책은 출판기념회 한번으로 손익 분기점인 3천부를 넘겼다고 한다. 출판사는 제작비용을 뽑았고 의원들은 돈 안내고 홍보한데다 이후 판매량에 따라 인세도 받는다. 이런 경우는 극소수다.
그러나 판매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미리 출판비조로 권당 소정액을 지불하고 한정판을 찍는다. 이후 팔리는 만큼 출판사로부터 다시 돈을 가져오는 식이다. 미리 현찰을 지불하고 일정 분량을 찍어 출마할 지역구에 뿌린다. 그래서 매번 선거 때만 되면 자서전이 쏟아져 나온다.
자서전 만이 아니다. 지역이나 국가가 나아갈 비전, 정책을 담은 책까지 종류가 천차만별이다. 내년 5월 실시되는 지방선거를 앞둔 요즘은 더욱 많다. 공식 선거운동기간 전 출판기념회가 유일한 합법적 선거운동 수단이기 때문이다. 공직자선거법에 의해 출판기념회가 금지되는 내년 3월2일 이전까지 정치인들의 이름으로 나오는 책 발간과 출판기념회는 계속될 게 분명하다.
문제는 자서전이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구분이 안되는 내용이 많다는 점이다. 후보가 원하는대로 대필작가에 의해 과거사가 미화되고 각색되는 자서전은 소설이지 인생회고가 아니다. 자신의 이미지와 경력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책은 오히려 불신감을 줄 수도 있다. 지난 17대 총선 당시 어떤 후보는 한달 만에 급조한 자서전 3만5천부를 무더기로 살포했다. 책 살포는 선거법상 기부행위이지만 선관위가 일일이 단속하기 어려운 점을 후보들은 최대한 이용한다. 그러나 선거 때면 쏟아져 나온 자서전이나 정책집들은 대부분이 쓰레기장으로 직행한다. 정치인들이 두고 두고 보전될 자서전을 냈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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