德(덕)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은 원래 천하의 건달이었다. 젊은 시절 그는 농사일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놀기만 했다. 덕(德)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었다. 한나라와 초(楚)나라 군대가 대치할 때 초왕 항우(項羽)는 유방의 아버지를 사로 잡아 군진(軍陣) 앞에 세워 놓고 말했다. “철수하지 않으면 네 아버지를 삶아 먹겠다” 유방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네가 내 아버지를 삶아 먹겠다면 내게도 한 그릇 보내주기 바란다” 항우는 하도 어이가 없어 유방의 아버지를 그냥 풀어 주었다. 항우는 ‘역발산(力拔山) 기개세(氣蓋世)’, 힘은 산이라도 뽑을 듯 하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만했다. 자애로운 인덕도 갖추고 있어 병사의 상처를 입으로 빨아주기도 했다.

그런데 항우는 건달에 불과한 유방에게 패하고 말았다. 항우는 벼슬을 아껴 현명한 인재를 중용하는 데 인색했지만, 유방은 소하·장량·한신 같은 재사(才士)를 부릴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삼국지’의 영웅 제갈량과 조조의 경우도 비슷하다. 제갈량은 능력과 재주는 탁월했지만 부하들을 믿지 못했다. 그는 매번 혼자 전략을 세우고 직접 전쟁을 감독하고 수행하려 했다. 반면 조조는 용인술이 뛰어났다. 그의 주변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따랐다. 조조는 옳고 그름을 떠나 남을 속이기를 꺼리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복종감을 느끼게 했다.

여덟 황제를 모신 당나라 재상 장전의(張全義)는 권력의 중심에 상존하는 방법을 “‘옳고 그름을 논하지 말고 양심을 저버려라’ ‘ 시류에 따라 움직이며 새로운 군주에게 잘 의탁하라’ 이때 범해선 안 되는 절대 금기가 있다. ‘너무 큰 공을 세워 군주를 불안하게 하는 것’, ‘권세가 너무 큰 나머지 군주를 업신여기는 것’, ‘재능이 너무 탁월하여 주인을 압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춘추 전국시대 진나라 문공은 19년간 망명생활을 하는 고초를 겪었지만 끝내 왕위에 올랐다. 후퇴를 거듭하면서도 병사들을 격려하고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며 신망을 얻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맹자는 “힘으로 남을 복종시키는 것은 진정으로 복종시키는 게 아니다. 덕으로 남을 복종시키는 것이 마음속으로부터 기뻐서 정말로 복종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덕이 아닌 힘으로 따르게 하려는 권력자들이 주위에 많아서 중국 고사 몇 가지를 생각해 봤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누르는 세상이 언제나 올까.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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