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비판하는 일부 논객을 겨냥, “X도 아닌 XX 네 놈이 말도 안 되는 칼럼으로 대통령을 조롱하고 있다”고 욕했었다. 술만 먹으면(취하면) 욕지거리를 퍼붓는 주사(酒邪)꾼이 더러 있지만, 그래도 한 국가의 법무장관이라는 인사가 한 주정치고는 심하긴 했다. 파문이 일자 사과는 했지만 천 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점수를 땄을 게 분명하다.
소설 ‘어머니’로 유명한 러시아의 작가 막심 고리키는 “욕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자는 욕을 한 당사자”라고 했지만 욕 가운데 가장 더러운 욕은 당사자가 없는 데서 얼굴과 이름을 감추고 하는 욕이다.
예컨대 요즘 유행하는 소위 ‘악플’이다. ‘악플’은 ‘악성(惡性)’과 ‘리플(reply· 댓글이라는 의미)’을 합성한 ‘악성리플’의 줄임말이다. 인터넷상의 게시물에 악의적인 욕설이나 비방이 담긴 댓글을 다는 행위 혹은 그런 댓글을 뜻하는 신조어인 악플은 비겁하다.
1989년 북한을 방문했던 임수경씨의 아들이 지난해 7월 필리핀에서 익사했다는 보도에 악플을 단 네티즌들의 만행은 너무 심했다. 임씨는 그들을 고발했는데 알고 보니 검찰청에 불려온 사람들이 3 ~4명을 빼고는 모두 불혹을 넘긴 중년이었고, 60세 이상도 5~6명이나 됐다. 대학 교수와 금융기관의 중견간부, 대기업 회사원, 전직 공무원 등 이었다. 또 미국 시카고에서 15세 한인 소녀가 계부의 칼에 찔려 숨진 사건을 두고 “요즘 싸가지 없는 종자들은 칼맛을 봐야 정신을 차린다”, “한국이 싫다고 떠난 X끼들 어떻게 뒈X든 뭐가 대단하냐”라거나, 호남 지방폭설에 대해 “전라도에 내린 하늘의 저주다”, “ DJ 따라 다니던 인간들게 하늘이 노했다”고 저주를 퍼부었다.
댓글은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으며 특정 사안에 대해 안목을 넓히는 등 긍정적 측면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인터넷에 뜨는 사이버 테러에 버금갈 정도의 악플은 용납이 안 된다.
욕에도 품격이 있다. 욕은 욕이로되 욕 같지 않은 말이 있는가 하면 들으면 바로 귀를 씻어야 할 상스럽고 더러운 욕이 있다, 댓글 처벌을 놓고 ‘표현자유 위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러나 익명의 ‘욕’은 정당치 못하다. 악플 보다는 차라리 천정배 장관처럼 대놓고 이 놈 저 놈 하는 게 낫다. / 임병호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