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2

깊은 계곡의 얼음이 녹기 시작하고 맑은 물이 흐르면 버들강아지가 부끄러운듯 이른 봄을 알린다. 갯버들·키버들 등도 다투어 봄소식을 알린다. 명자나무꽃은 붉으면서도 앳되다. 아가씨꽃이라고도 하는데 그 별명처럼 봄과 더불어 생리의 절정을 상징한다. 횟잎나무와 두릅나무의 새순은 그 독특한 향기와 맛으로 봄의 정취를 느끼게 하고, 패랭이꽃·씨름꽃(제비꽃)은 가냘픈 아름다움으로 봄을 장식한다. 패랭이꽃은 산뜻하고 깨끗하여 구김새 없는 젊음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화개월령’을 보면 정월에는 매화·동백꽃·두견화가 피며, 2월에는 매화·홍벽도(紅碧桃)·춘백·산수유꽃, 3월에는 두견·앵도·살구·복숭아·배·사계화(四季花)·해당·청향·능금·사과꽃이 핀다고 하였다.

3월3일은 삼짇날이다. 강남에 갔던 제비도 이 날이 되면 옛집을 찾아 온다. 옛날에는 제비가 마음씨 좋은 사람의 집을 찾아가서 추녀 밑에 둥지를 만들고 새끼를 깐다고 믿었다. 이처럼 제비는 항상 반가운 남녘의 봄손님이었다. 두견새의 애달픈 부르짖음이 노래가 되고, 鶴들이 모여 들면 봄들판은 어제보다 더 푸르러진다. 동면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활동을 다시 시작하면 곤충들이 탄생한다. 갓 피어난 꽃, 꽃 사이를 노랑나비·흰나비·벌 등이 날아 다니고 노고지리도 보리밭에서 노래 부른다.

전설과 동요·동화에 잘나오는 할미꽃은 호젓한 산기슭과 잔디밭 또는 풀밭에서 고개를 내민다. 눈부셔 태양을 쳐다보지 못하면서 고개 숙여 수줍어하는 모양을 사람들은 예로부터 사랑해 왔다. 꽃잎 바깥쪽이 흰 털로 덮여 있어서 할미꽃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꽃이 지면 긴 흰 털을 덮어쓰는 모습이 늙은이를 닮았다고 해서 백두옹(白頭翁)이라고도 한다. 할미꽃은 외양이 화려한 장미나 모란보다도 사랑을 받았다고 옛 문헌에 나온다. 할미꽃의 꽃잎은 여섯개의 꽃받침이 꽃잎처럼 보이는 것이지 식물학상으로는 진정한 꽃잎은 아니다. 높은 산에는 눈녹은 틈을 찾아 얼레지꽃이 피어나는데, 이 또한 할미꽃처럼 고개 숙여 피는 모습이 엄청난 자연의 장엄성에 외경(畏敬)을 표하는 모습이다. 낙엽수의 잎이 돋아나기 전 양지 바른 곳에서는 바람개비꽃이 신화처럼 산과 숲을 단장하고, 들과 길가에서 민들레꽃이 나그네를 불러 세워 봄이 왔다고 속삭인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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