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으로 접어드는 입춘(立春)은 ‘24절기(二十四節氣)’ 중 첫번째라는 점에서 해마다 새롭다. 농경사회의 일정표 역할을 하는 24절기는 고대부터 태양력을 기준으로 삼았다.
농사를 짓기 위해선 계절의 변화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달의 운동에 근거한 음력은 오차가 커서 고대인들은 일찍부터 24절기를 양력으로 산정했다. 24절기는 중국 주나라(BC 1046~771) 때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입춘은 음력으로 섣달에 들기도 하고 정월에 들기도 한다. 정월과 섣달에 거듭 들기도 하는데 이러한 경우 재봉춘(再逢春)이라고 한다. 입춘을 음력으로 오해하는 까닭은 음력이 상세히 표기된 달력에 절기가 빠지지 않고 기재됐기 때문이다. 또 우리나라는 순수한 의미의 음력은 사용된 적이 없다. 신라시대의 역법(曆法)이 처음 전해졌을 때부터 달과 태양의 움직임을 동시에 감안한 ‘태양태음력’을 사용했다. 음력으로 쇠는 명절은 날짜가 들쭉날쭉하지만 양력 기준인 24절기는 날짜 변동이 거의 없다.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여서 여러가지 민속적인 행사를 펼쳤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입춘첩을 써붙이는 일이다. 춘축(春祝)·입춘축(立春祝)이라고도 하는데 오늘날도 각 가정에서 대문기둥이나 대들보, 천장 등에 좋은 뜻의 글귀를 써서 붙인다. 대개 입춘대길(立春大吉)·국태민안(國泰民安)·건양다경(建陽多慶)·만사형통(萬事亨通) 등을 써붙였다. 이 글을 입춘서라고 하였다.
옛날 대궐에서는 설날에 내전 기둥과 난간에다 문신들이 지은 연상시(延祥詩) 중에서 좋은 것을 뽑아 써 붙였는데 이것을 춘첩자(春帖子)라고 불렀다. 사대부 집에서는 흔히 입춘첩을 새로 지어 붙이거나 옛날 사람들의 아름다운 글귀를 따다가 썼다. 제주도에서는 농경의례로 ‘입춘굿’이라는 큰굿을 했다.
입춘날부터 봄이 시작된다지만 사람들은 동지(冬至)만 지나면 봄이 온다는 생각을 한다. “동지를 건너/소한, 대한을 지나/남녘에서 오는/봄을 보았다.//그리워 하면서/잠시/잊기도 했었는데//봄은/나를 위하여/꿈길을 열었나 보다”라는 임수향 시인의 詩 ‘봄을 기다리면’ 일부를 음미하면 봄은 이미 입춘 전에 사람들 마음 속에 와 있었던 모양이다. 오늘 모든 사람들이 가슴벽에 입춘첩을 써 붙였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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