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의학의 아버지’로 추앙 받는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375?)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지금도 서양 의학을 공부한 의과대학 졸업생들은 졸업식장에서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선언하노라…”하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낭독한다.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금언 가운데 “인생은 길고 예술은 길다”는 특히 유명하다. 이 금언의 ‘예술’은 본디 그리스어 ‘테크네’를 가리키는데, 그 말이 영어의 ‘아트’(art)로 옮겨져 오늘날 예술을 지칭하는 것이 되고 말았지만, 애초의 뜻을 말하자면 ‘의술’로 옮겨야 마땅하다. 이 말은 의술을 초자연적인 능력이 아닌 인간의 ‘기술’ 또는 ‘과학’으로 보는 혁명적 사고를 품고 있다.
히포크라테스는 의술의 가장 중요한 기초로 ‘임상적 관찰’과 ‘합리적 추론’을 들었다. 그는 그때까지 신의 저주로 여겨졌던 모든 질병의 원인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려 했다. 그가 관찰과 추론을 얼마나 중시했는지는 그의 이름을 딴 의학용어가 지금도 쓰이고 있는 데서 확인된다.
히포크라테스의 집안은 대대로 의술을 업으로 삼은 의사 가문이었다. 다만 히포크라테스가 선조들과 질적으로 달랐던 것은 그의 탁월한 능력 말고도 ‘의술 교육 개방’이라는 전례 없는 결단에 있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이렇게 가문의 비의를 외부로 개방한 히포크라테스가 제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맹세시키려고 만든 것이라고 한다. “나는 내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에게 도움이 될 치료를 해 주며, 절대로 해치거나 옳지 않은 일을 행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떠한 사람이 독약을 처방해 달라고 하더라도 절대로 조제해 주지 않을 것이며, 그런 방법을 제안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인도주의를 가득 담고 있다. 이 선서의 내용대로 히포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은 귀족과 노예를 가리지 않고 모든 환자를 차별 없이 치료했으며 의사의 편의보다는 환자의 고통을 중심에 둔 휴머니즘적 의술을 실천했다. “만약 돈이 없는 낯선 사람을 진료할 기회가 생긴다면 할 수 있는 한 모든 배려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는 곳에 의술에 대한 사랑도 있기 때문이다”라는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원칙도 오늘날 의사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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