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상계의 고질병

“파벌싸움이 너무 커져 선수들이 많은 피해를 보는 것 같다. 내 전부였던 스케이트를 그만 두고 싶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다”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국민의 갈채를 받은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 선수가 인터넷 한 홈페이지에 털어 놓은 아픈 속내다.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대회에서 남녀 개인종합 1위를 차지한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이 볼썽사나운 귀국 환영식을 치른 후 나온 탄식이다. 쇼트트랙 세계선수권 4연패를 달성하고 귀국한 지난 4일 아버지가 인천공항에서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을 폭행한 사실때문에 마음이 괴로웠던 것으로 보인다.

안 선수는 지난 3일 이번 대회 3천m에서 1위로 달리던 이호석 선수를 오른팔로 밀어 넘어트렸다는 이유로 실격됐다. 하지만 아버지 안 씨는 “ 선수들과 코치가 짜고 안현수가 1등 하는 것을 막았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말리던 빙상연맹 관계자에게 손찌검을 했다. 빙상계의 파벌논란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외국에 나가 국위를 선양하고 개선한 선수들을 환영하는 자리가 난장판이 됐으니 망신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 쪽의 잘잘못을 떠나 한국 쇼트트랙의 금빛 명예에 흠집을 남겼다.

쇼트트랙의 경우 선수들의 기량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이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한국체대와 비한국체대 출신 지도자간 등의 대립으로 선수들의 선수촌 입촌 거부사태 등 마찰이 끊이질 않았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은 지난 동계올림픽에서도 그랬듯이 사실상 ‘2개의 팀’으로 운영돼 왔다. 선수들이 남녀불문 두 패로 갈려 각각의 코치로부터 훈련은 물론 작전 지시까지 별도로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선수들의 기량과 정신력이 이상할 정도다.

선수들을 학맥과 인맥으로 갈라 놓고, 선수단 구성과 운영의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어른들의 행태가 정말 병폐다. 선수들이 코치의 눈치를 보느라 우승한 동료에게 축하 인사도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고 하니 할 말을 잊게 한다. 2002년 월드컵축구 4강의 기적, 제1회 WBC 4강 신화를 이룩한 축구 및 야구대표팀의 지도력을 빙상계는 본받아야 한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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