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상자’

가족간의 대화를 단절시키는 것이 TV다. 저녁밥상을 물리고 나면 온 가족이 돌아가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곤했던 가족문화가 TV란 괴물이 나오면서 망가졌다.

초저녁 거실 공간에서 이 채널 저 채널을 돌려가며 멍청하게 TV만 바라보던 가족들은 이윽고 황금시간대가 지나면 잠 자려고 각기 제방으로 들어간다. 이로써 그날 일과는 끝이다. 소중한 가족간의 저녁시간을 이렇게 낭비하곤 한다.

토크쇼라야 시시콜콜한 그 얘기가 그 얘기다. 연속극이래야 그야말로 연속극적으로 일부러 짜맞춘 얘기다. 이런데도 TV화면에 따라 일희일비한다. TV노예가 됐다. 중독증에 걸려도 단단히 걸렸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남편이나 아내 없이는 살아도 TV 없이는 못산다는 TV족속이 적잖다.

EBS가 2004년 12월에 ‘20일간 TV끄고 살아보기’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다. 당시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131가구 중 130가구가 여전히 TV를 보고 있는 것으로 보도된 것을 보면 TV중독이 얼마나 극심한 가를 짐작케 한다. 그런데 아직도 TV없이 사는 집이 딱 한 군데 있는 과천 어느 40대 가장의 집 저녁 가족 얘기는 정말 다정다감하다. TV에 빼앗겼다가 되찾은 가족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실감케 한다.

국내 TV가 흑백에서 컬러로 방영된 것은 1980년이다. 당시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가 초법적으로 통치하면서 민중영합책으로 준비가 덜 된 컬러방송을 우격다짐으로 몰아쳐 앞당겨 방송케 한 것이 컬러방송의 시작이었다. 그 무렵 지지대子가 있었던 신문사에 TV칼럼을 연재했던 소설가 최인호씨는 TV를 가리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바보상자’라고 했던 것을 기억한다.

TV가 ‘바보상자’인 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뉴스의 속보성, 현장성은 TV의 강점이다. 볼만한 다큐멘터리도 더러는 있다. 그러나 대체로 TV중독증의 폐해는 갈수록 더 심해진다. TV채널에 매달리는 시청이 아니고, TV채널을 끌 줄도 아는 신생활 시청의 지혜가 있어야 할 때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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