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급(首級)’은 ‘싸움터에서 벤 적군의 머리’이다. 그런데 황석영의 ‘삼국지’에 “장비의 수급을 베어든 범강과 장달은… ”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장비의 목을 벤…”이 맞는다. 이문열의 ‘삼국지’에 “집에 돌아 와 급히 말에 안장을 매면서도 유비는 크게 불안해하지 않았다”는 문장이 있는데 “안장을 매다”보다는 “안장을 메우다”가 더 안성맞춤이다. ‘메우다’는 ‘말이나 소의 목에 멍에를 얹어서 매다’라는 뜻이다. 장정일 ‘삼국지’에 “조조의 대군이 들이 닥치는 마을은 사람들이 모두 집을 버리고 산속으로 피난 가는 바람에…”에서 ‘피난’은 ‘피란’으로 고쳐야 한다. ‘피난’은 ‘홍수 따위의 재난을 피하여 멀리 옮겨 감’이고, ‘피란’은 ‘난리를 옮겨 감’이기 때문이다.
1968년 학생잡지 ‘학원’의 편집기자로 시작해 30여 년 동안 취재와 편집 일을 하며 ‘남의 글을 눈 여겨 보아 온’ 권오운 시인이 최근 펴낸 책 ‘작가들이 결딴낸 우리말’을 보면 문학이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유명 소설가 50여 명의 글 실수를 집어낸 ‘작가들이 결딴낸 우리말’ 가운데 이런 문장도 있다. “남자 밑에 깔려 색을 쓰면서도 카르멘인가 뭔가 그따위 고상을 떨어야 하는 여자”(김별아)에서 ‘고상’은 오문이다. ‘언행이 고상(高尙)하다’라고 쓸 수는 있지만, ‘고상’은 떨 수도, 부릴 수도, 거릴 수도 없다. “장사하는 일로 일생을 늙어와서 잔푼돈의 셈에 민감한 그런 사람들”(배수아)에서 잔푼돈은 ‘잔돈푼’(얼마 안 되는 돈)의 잘못이다. “그녀는 배신자이며 도둑이며 화냥녀였다”(공지영의 ‘봉순이 언니’)에서 ‘봉순이’는 ‘화냥년’이 아니다. ‘화냥기’는 ‘계집의 바람기’, ‘화냥질’은 ‘서방질’, ‘화냥년’은 ‘서방질을 하는 계집’이다. ‘봉순이’는 유부녀가 아니라 처녀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 ‘화냥녀’는 ‘화냥년’이 아니라 ‘화냥女’다”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는 있겠다. “매니큐어를 한 내 발톱”(김인숙의 ‘물 위에서’)도 틀렸다. 매니큐어는 손톱을 아름답게 꾸미는 화장품이고, 발과 발톱을 곱게 다듬는 화장법은 ‘페디큐어’다.
“성실한 독자라면 나뿐 아니라 누구라도 어휘 사용의 문제를 짚어 낼 수 있다. 작가들이 기분 나빠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술 한 잔씩 사야 할 것”이라는 권오운 시인의 말이 그럴듯 하게 들린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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