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없는 봄날

올 봄은 ‘5·31 지방선거’ 때문에 전국적으로 지역축제가 거의 없다. 아니 개최하지 못한다. 열린다해도 축제 기분이 덜 난다.

‘선거 전 60일 전 부터’라는 선거규정에 따라 4월부터 두 달간 ‘법령에 규정된 행사’ 등을 제외하고는 자치단체들이 각종 문화행사를 지원할 수 없어서다.

경기도의 경우, 연천군은 다음달 4일 열리는 ‘구석기(고인돌)축제’에서 무료 셔틀버스 운행을 못하게 됐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거구민에게 교통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공직선거법상 기부행위에 해당한다’고 통보해왔기 때문이다. 연천군은 뾰족한 대안이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도보로 이동하는 등 인터넷 홈페이지를 이용, 홍보를 강화하고 있지만 관람객이 적을 것은 보나마다다.

그런데 이천시의 ‘도자기축제’는 사정이 좀 낫다. 행사장과 시외버스터미널 등을 오가는 무료 버스 운행에 대해 선관위로부터 ‘매년 열렸던 행사인 데다 지역주민 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 등 해당 선거구 외에 다른 지역에서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 만큼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받았다.

연천군의 ‘구석기축제’도 이와 다르지 않는데 선관위의 유권해석이 지역에 따라 다른 모양이다. 하지만 이천시 남사면이나 장호원읍 등 행사장과 거리가 먼 곳에서 오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제공하던 교통편은 아예 제공하지 않기로 해 답답하기는 매 한가지다.

다른 시·도 역시 지자체 봄 축제가 선거법 때문에 울고 있다. 먹을거리축제의 경우 더욱 심하다. 신라의 도읍지 경주(慶州)의 ‘한국의 술과 떡잔치 2006 ’ 행사는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술이름 알아맞추기’ 행사가 없어졌다. 지역별 고유 술 이름을 맞힌 참가자에게 술 한 병을 상품으로 주는 행사가 자치단체장의 선심성 행위를 금지하는 선거법에 저촉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게다가 신라왕조 56명과 992년의 신라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56가지 술을 992개 술잔에 담아 관람객들에게 맛보게 하는 ‘992 술잔’ 이벤트 역시 ‘선거법’에 발목을 붙잡혔다. 경주의 술맛과 고도의 정취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아쉽기 짝이 없다. 온갖꽃이 피어나고 새들이 지저귀는 4월, 5월에 지역축제를 못하게 만들어 놓아서 그런가? 봄날에 때 아닌 강풍·돌풍이 불고,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쏟아지더니 폭설까지 내렸다.

“그 놈의 선거가 도대체 뭐길래”하는 사람들의 장탄식 사이로 오늘도 서정과 낭만이 없는 봄날이 간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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