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회장 사법처리

아니나 다를까, 예의 죽는 시늉이 나왔다. 검찰이 현대차·기아그룹 회장의 신병처리를 놓고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위기론이 제기됐다.

안다. 체코 공장 착공식도 연기되고 해외 기업설명회도 취소되고 해외 신인도에도 지장이 있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현대차·기아그룹 산하 협력업체에선 정 회장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검찰에 냈다. 그룹 임원들은 비상대기 속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 회장이 없으면 경영에 공백이 생기고, 공백이 생기면 수출이 저해되고, 수출이 저해되면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것이 그룹측이 토로하는 선처 호소의 이유다. 틀린말은 아니지만 이번만은 아니다.

재벌의 비리가 항상 그같은 이유로 더 이상 두둔되어서는 재벌은 항상 부정을 일삼기 마련이다. 재벌의 체질개선을 위해서는 재벌의 오만을 고치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 재벌은 예컨대 정치자금 제공을 즐겼으면서 정치자금을 뜯기는 것처럼 엄살을 피워왔다. 물론 정치권도 나쁘지만 이러한 재벌도 나쁘다. 검은 정치자금 거래를 단절키 위해서도 재벌의 체질이 달라져야 한다.

정 회장 문제를 두고 ‘경제 위기론’과 ‘경제 정의론’이 있는 것 같다. 위기론은 예의 경제 악화설이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경제 정의론’에 무게를 더 두어야 한다는 판단을 갖는다. 그룹 총수가 자유롭지 못하면 경영에 어느 정도의 지장이 있을 걸 부인하진 않는다. 그러나 현대차·기아그룹이 조직체라면 이를 극복할 조직의 기능을 다할 의무가 있다.

국제유가는 날마다 고공 행진을 거듭하고 환율은 날로 떨어져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환경에 어려움이 가중되는 시기다. 그렇지만 아니다. 이번 기회에 고질이 된 재벌의 나쁜 버릇을 단단히 고쳐야 한다.

검찰은 삼성의 편법상속을 선처한 전례가 정 회장 문제를 두고 무척 부담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형평에 어긋난단 말을 들을 순 있다. 그러나 크게 보아 이번만은 아니다. 경영권 승계, 비자금 조성 등에 배임 및 탈세 등 혐의가 알려진대로 확인됐으면 만민이 법 앞에 평등함을 보여 재벌들에게 본때를 보이는 경종을 울려야 한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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