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文사대주의

정부나 자치단체의 용어에 영어가 갈수록 더 범람한다. 보편화된 외래어와는 다르다. 도대체 이해할만한 계층이 얼마나 될 것인지 의심스런 영자 단어를 마구잡이로 쓴다.

‘독도 태스크포스’ ‘수도권 패키지’ ‘로드맵’ ‘컨셉’ ‘글로벌 인재’ ‘경영마인드’ ‘컨설팅업체’ ‘스킨십’ ‘마케팅’ 등 다 열거하기엔 이 지면이 모자랄 정도다.

‘담화’나 ‘대담’이라고 하면 될말도 ‘컨버세이션’이라고 하기가 일쑤다. ‘판교 테크노밸리’를 ‘판교기술마을’이나 ‘판교기술단지’라고 하면 어디가 덧나는지 굳이 영어로만 쓴다.

한 때 축구에서 우리말 쓰기 일환으로 코너킥을 ‘구석차기’ 프리킥을 ‘놓고차기’ 등으로 쓰다가 그만둔 적이 있다. 국제경기종목의 공용어까지 우리말로 쓰는 것은 되레 치졸하다는 비판이 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대한민국의 공문서 주요내용이 대한민국 말보단 영·미 말이 판을 치는 상황이니 이건 또 무슨 변괴인지 알 수 없다. 꼬부랑 말이나 꼬부랑 글씨로 써야 권위가 있다고 여긴다면 이야말로 사대주의적 문화사상이다. 그런 영문 표기의 남용을 해득하지 못하는 국민층은 위화감을 가질 게 뻔한데, 아마 해득하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정부나 관가에서 이렇다 보니 사회도 덩달아 영자 간판이 넘쳐난다. 예컨대 ‘통닭튀김집’이라면 될 것을 굳이 ‘치킨센터’라고 쓴다. 무슨 의상실 같은 것은 으레 꼬부랑 말을 붙이는 걸로 됐다. “남조선 길거리를 보면 완전히 미제국주의의 식민지인 것을 알 수 있습네다”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북녘선수단 응원차 왔던 미녀군단의 한 대학생이 했던 말이다.

자주나 반미를 입버릇 삼는 사람들이 영문표기라면 사족을 못쓰고 즐기는 것을 보면 그도 이상하단 생각이 든다. 굳이 영자가 아니어도 예쁜 우리말로 쓸 수 있는 말이 많다. 과다한 영문표기 추방운동을 제의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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