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세계보건기구(WHO) 총회 개막을 이틀 앞둔 지난 20일 집무실에서 격무 중 뇌혈전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다더니 끝내 비보가 제네바에서 날아들었다. 이종욱 WHO 사무총장이 타계한 22일은 총회 개막일, 갑작스런 소식에 세계 각국 보건장관들은 충격속에 비통해 했다. 평범한 의사의 길을 거부한 채 인술의 박애주의를 몸소 실천했다.
서울대 의대 재학시절부터 라자로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일본인 부인 가부라키 레이코씨를 만난 것도 그녀가 당시 한국에 나와 라자로마을에서 일했던 봉사활동을 통해서다. 부부는 이어 1970년대를 사모아 등지서 한센병 퇴치운동을 벌인 게 WHO와 인연을 맺게되어 서태평양지역 한센병 자문관이 됐다.
WHO 본부 예방백신사업국장(1994~1998) 정책자문관(1998~1999) 결핵관리국장(2003~2003)을 거쳐 지난 2003년 7월 사무총장으로 선출됐다. 백신국장으로 있으면서는 소아마비 퇴치사업에 눈부신 성과를 거두어 ‘백신의 황제’란 말을 들었고, 결핵국장 땐 결핵과 에이즈 퇴치 및 예방운동에 힘썼으며, 사무총장이 되고는 조류인플루엔자 확산 방지에 온 힘을 쏟았다.
가는 곳마다 맡은 일마다 정력적으로 활약하며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으면서도, 사생활은 소형승용차를 이용할만큼 검소하고 사람됨은 후배들에게 겸손하단 말을 들을 정도로 소탈했다.
“그는 우리 보건장관들이 언제든지 대화할 수 있는 가까운 사람, 비범한 인물, 비범한 리더였다” 이는 WHO 총회를 애도와 묵념으로 시작한 살가도 총회 의장(스페인 보건장관)의 말이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유엔산하 최대 국제기구의 수장으로 있으면서 세계인의 존경을 받던 그가 간 나이가 아직은 아깝다. 해방둥이니까 이제 예순한 살, 더 한창 일할 나이에 무심한 하늘은 왜 그토록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을 우리들로부터 빼앗아간 것일까, 삼가 명복을 빈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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