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연설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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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연설은 끝없는 노력의 산물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라는 표현이 나온 미국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도 그랬다. 이 연설은 불과 272개 단어로 이뤄진 2분짜리 연설이다. 링컨이 게티즈버그로 가는 열차 속에서 펀지 겉봉에 대충 쓴 것이란 얘기도 있지만, 그러나 링컨이 오랫동안 ‘언어의 음악적 특성’을 연구해 왔고,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콘텐트를 압축적인 문장에 담고자 엄청난 노력을 했음이 후일 밝혀졌다.

영국 수상 처칠은 거꾸로 ‘연설 같지 않은 연설’ 스타일로 명성을 쌓았다. 처칠은 원고를 단상에 내놓긴 했지만 거의 외워 연설 중엔 절대로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래서 청중은 마치 대화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연설 틈틈이 잠깐씩 멈추기를 되풀이해 청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긴장을 끌어냈다. 말을 조금 더듬어 ‘S’ 발음을 잘 못 하는 단점을 자신만의 연설 스타일로 덮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1964년 동료 의원에 대한 구속동의안 표결을 저지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에서 5시간19분 동안 쉬지 않고 연설한 것은 압권이었다. 한국 정당사상 최장의 필리버스터(의사진행 방해)로 기록돼 있다. DJ는 각종 현안에 대해 ‘첫째, 둘째…’ 식으로 접근한 뒤 마지막에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로 박수를 유도한다.

강조할 대목에서 오른손을 들어 칼로 도마를 내리치는 듯한 ‘칼도마 손짓’이 곁들여진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어린 시절부터 거제도 뒷산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연설 연습을 했다고 한다. 서울대 철학과 2학년 때 정부 수립 기념 웅변대회에 참가, 2등으로 입상해 외무부장관상을 받았다. 웅변대회 입상을 계기로 당시 장택상 외무부장관과 인연을 맺어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YS는 문장을 짧게 끊는 ‘단문형’ 기법을 구사하여 “민주주의를 쟁취해야 합니다” “이 김영삼이를 밀어 주십시오” 식이다. YS는 1980년대 야당 총재일 때 특히 연설에 힘이 있었다.

1952년부터 34년간 하원의원을 했고 그중 10년을 하원의장으로 보낸 미국의 거물 정치인 팁 오닐은 “정치인의 말은 정치의 모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말을 지켜라”는 연설을 남겼다. 한국 정치인들이 가슴 깊이 새겨두어야 할 명연설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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