過慾?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기자페이지

정부도 그렇지만 북한이 24일 경의선과 동해선의 시험운행 취소를 일방적으로 통보해와 김대중(DJ) 전 대통령측이 난감해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군부가 열차 운행을 군사적으로 보장해 주지 않아서 열차 시험운행을 취소한다”는 전화통지문 한 장으로 7천억 원의 예산을 들여 연결한 남북 철도 시험운행 합의가 깨져 버렸다. 40억 원어치의 철도 자재와 수백억 원어치의 경공업 원자재를 주기로 했는데도 합의를 파기한 것은 과거의 선례로 봐 북한의 속뜻은 딴 데 있는 게 분명하다.

DJ측이 “지난번(22일) 금강산 실무 접촉에서 남북의 의견이 엇갈려 29일 개성에서 열릴 2차 방북 실무접촉에서 계속 협의하기로 한 부분”이라며 여운을 남기는 등 열차 방북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경의선과 동해선 남북 철도 연결의 모태가 2000년의 6·15 남북 정상회담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취소 통보에 대해 정치권에서도 “남북 사이의 기찻길을 여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큰 사업인데 아쉽고 유감스럽다”고 일제히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DJ가 “(다음 달 북한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통일문제를 협의하겠다”고 23일 밝힌 점이다. 2000년 6·15정상회담에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한 자신의 ‘연합제 방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방안’을 다시 협의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DJ는 현재 통일 방안을 논의할 ‘당사자 적격(適格)’을 갖고 있지 못하다. DJ의 연합제안은 개인적인 ‘3단계 통일방안’의 첫째 단계로, 국회 동의를 받아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이 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남북연합안과 다르다.

더구나 ‘개인적 방북’이라면서 국민적 동의가 필요한 통일방안을 논의하겠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월권(越權)이다. 아니면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특사자격 방북을 부여해야 한다.

DJ의 역할은 1994년 북핵 위기 때 김일성 주석을 만나 돌파구를 마련했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처럼 ‘중재자’에 국한돼야 한다. 국가를 위한 일이라 하여도 대통령 시절의 권력과 권한을 잊지 못하는 과욕(過慾)으로 오해받아서는 안 된다./임병호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