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이후 60년간 소비자물가지수는 해마다 21.3%씩 올라 10만9천배로 상승했다. 화폐가치가 11만분의 1로 작아졌다는 얘기다. 1960년대 중반까지 해마다 50%씩 뜀박질하던 물가는 1980년대 후반 들어서야 안정기로 접어들었으나 광복 직후엔 아주 심했다. 물가상승률은 1~6월 9.4%에서 8~12월에 무려 2,445.5%로 급등했다. 공무원 월급도 1944년에 비해 325%가 올랐지만 뛰는 물가에 비할 바 아니었다.
60년간 개별 물품의 가격은 엄청나게 변했지만 이를 쌀값과 비교해보면 수치가 달라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등급 쌀 80㎏ 한가마니의 도매가격은 1945년 0.2865원에서 지난해 6월 현재 15만8천138원이었다. 이를 기준 삼는다면 쌀 한가마니로 살 수 있는 쇠고기(600g)는 1945년엔 15근이었지만 지난해에는 4.3근에 불과했다. 쌀값으로 본 쇠고기의 상대가격은 60년새 3배 이상 오른 셈이다.
이와 달리 60년 전엔 쇠고기보다 37%나 비쌌던 돼지고기는 이제 쇠고기의 값의 4분의 1이 되면서 신세가 역전됐다. 1945년엔 쌀 한가마니로 돼지고기 11근밖에 못 샀지만 지금은 16.5근을 살 수 있으니 50%정도 값이 떨어진 폭이다.
소줏값도 쌀값에 비교하면 값이 내렸다. 60년 전 쌀 한가마니면 2홉 소주 27병밖에 못 샀지만 지금은 175병을 살 수 있으니 6.5배나 ‘폭락’한 셈이다. 쌀값과 가장 비슷하게 움직인 것은 서울~부산간 기차요금이다.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쌀 한가마니를 팔면 경부선을 편도로 2.5회 이용할 수 있다.
생필품 가운데 가장 극적인 반전을 보인 품목은 달걀과 북어다. 60년 전만 해도 달걀 1개를 들고 나가면 북어 2마리를 사고도 시내버스를 두 번이나 탈 수 있었다. 달걀은 소풍 가는 날이나 생일 같은 날 먹는 별식이었다. 하지만 요즘 북어 한마리면 달걀 27개를 살 수 있다. 쌀값에 비하면 요즘 달걀값은 60년 전의 16%에 불과하다. 반면 북어값은 11배 이상 폭등했다.
암탉이 달걀을 낳으면 한 개 두 개 쌀독에 보관해 두었다가 한꾸러미가 되면 시장에 내다 팔아 살림살이나 자식들 학교에 낼 돈을 마련하시던 어머니의 어진 눈빛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혀지지 않고 따뜻한데 세상 인심은 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지 서글프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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