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물결, 붉은 함성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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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월드컵축구대회 때와 지금 열리고 있는 2006년 독일월드컵축구대회에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단연 우리나라 응원단 ‘붉은악마’들이다. 응원을 하며 파도타기를 하면 그야말로 붉은물결이 파도처럼 출렁인다. ‘붉은악마(RED DEVILS)’라는 명칭이 멕시코 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때 4강에 오른 우리나라 선수들이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지침없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외국 언론들이 ‘붉은악마들(Red devils)’이라고 칭한 데서 비롯됐음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색(色)’은 각각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고유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특히 붉은색은 자극적인 색으로 사람의 감각과 열정을 자극한다. 힘과 에너지, 생명력, 그리고 흥분감과 연관된다. 붉은색은 또 환희, 행복감, 사랑의 감정 등을 자극한다. 진홍색은 가장 근원적인 육체적, 동물적 본능을 일깨워준다. 인간적이며 따스한 느낌을 지닌 붉은색은 생기가 없거나 혈액순환이 좋지 않을 때 사용되는 색이다.

한의학에서의 붉은색은 오장 중 심장에 해당한다. 심장은 단순히 혈류만 순환시키는 기관이 아니다. ‘심자신명출언(心者神明出焉)’이라 하여 정서기능과 사유기능을 심장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보고 이를 진단과 치료에 응용한다. 평소에 좋아하던 붉은색이 싫어지면 자신감과 의욕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한다.

붉은색의 생리적, 정서적 영향을 생각해 볼 때 우리나라 국민들이 월드컵축구경기 응원복으로 붉은 티셔츠를 선택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7%로 4년 연속 증가한 체감실업률, 이에 따라 높아진 서민의 생활고통지수, 25%를 넘어선 자살증가율, 자살로 이어지는 우울증, 특히 국민들을 물심양면으로 괴롭히는 정치 수준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사람의 열정과 감각을 일깨우는 붉은색이 가득 찬 경기장에서 같은 목소리와 같은 구호로 응원을 하거나 지켜보면 즉각 영향을 미쳐 울체된 기가 풀리고 심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축구와 관련해서 만큼은 우리나라 국민의 색은 붉은색이다. 월드컵 응원을 통해 열정을 깨우고 붉은물결 속에서 붉은함성을 질러 기를 소통시키는 것은 정신건강에도 유익한 일이다. 월드컵축구는 이래저래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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