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훈장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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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의 한국전쟁 무공훈장은 태극·을지·충무·화랑·인헌의 5등급이 있다. 그런데 6·25 한국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목숨을 걸고 조국을 지킨 전쟁 영웅들의 무공훈장 9만여 개가 아직까지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쟁 당시 육군은 전공을 세운 장병 16만2천여 명에게 훈장 ‘가수여증’과 ‘약장’을 발부했지만 실제 발급된 훈장은 7만3천여 개 뿐이다.

육군이 전후 8차례나 무공훈장 찾아 주기 운동을 해왔지만 아직까지 9만여 장의 훈장증서가 주인을 잃은 채 빛을 못 보고 있다고 한다.

호국의 징표는 소용돌이치는 전쟁의 혼란 속에서 대부분 주인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훈장증이 나온 줄 모르고 전역하거나 부상을 입고 후방으로 후송된 사이에 훈장증이 나온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례로 82세가 된 천영길씨의 경우, 한국전쟁이 발발한 해 입대한 뒤 30여 차례의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지만 무공훈장 수훈자란 사실을 모른 채 전역했다. 육군이 뒤늦게 노병의 전공을 확인하고 올해 4월 화랑무공훈장을 전달했다. 양구 전투에서 적의 포탄공격을 받아 입은 호국의 상처를 평생의 굴레로 안고 살았던 노병은 빛바랜 훈장을 가슴에 안고 눈물을 흘렸다. 공병대 하사로 전쟁에 나갔던 김영환(75세)씨는 전후방 부대 교대과정에서 세운 전공으로 훈장수여자가 됐지만 척추부상을 입고 후방병원에서 전역하는 바람에 반세기 만인 지난달 뒤늦게 훈장을 찾을 수 있었다.

훈장 가수여증을 분실하는 바람에 전공을 입증할 방법이 없어 훈장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무공훈장이 유족에게 전달되는 경우도 있다. 차정석씨는 한국전쟁 당시 1103 야전공병단에 배치돼 수 차례 전투에서 세운 공로로 무공훈장 수상자로 결정됐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모른 채 평생을 살다 지난해 운명을 달리했지만 올해 3월 아들(61세)이 부친의 무공훈장을 대신 받았다.

학도병으로 전쟁에 나가 유족도 없이 숨진 경우처럼 무공훈장의 주인공이 전사한 때는 훈장의 주인을 찾아 주기가 더욱 어렵다. 하지만 무공훈장의 주인공이 전사했더라도 유족들이 관련사실을 입증하면 훈장뿐 아니라 국가유공자로서 일정액의 보훈연금도 받을 수 있다. 호국·보훈의 달이 아니더라도 무공훈장의 주인공을 꾸준히 찾아야 한다. 무공훈장 주인공들이 있어 지금 대한민국이 존립함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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