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의 인정비화는 점심에서 시작된다. 이 초등학교 여선생은 제자 장손이가 집이 가난하여 점심때면 굶는것을 알고 자신이 싸온 밥을 주게 되면서 각별한 사제간이 된다. 여선생의 격려와 보살핌을 받은 제자는 장성하여 검사가 됐다. 그러던 어느날 그 여선생이 살인범으로 체포된 신문 보도를 본 제자는 사표를 내고 스승의 변호사로 나선다. 여교사는 직장을 그만두고 결혼한 게 망나니 같은 남편을 잘못만나, 한날 술취한 남편이 아내를 죽인다며 칼을 들고 문지방을 넘다가 넘어지면서 제풀에 찔려 죽은 것을 살인혐의를 뒤집어 쓴 것이다. 이에 제자는 은사의 누명을 천신만고 끝에 벗겨 마침내 무죄석방되는 장면에 이르러 “아! 청명한 하늘을 다시 보게 됐으니 스승과 제자의 사랑이 어찌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더란 말인가!!” 하는 변사의 대사에 그만 눈물을 글썽거린 관객들은 우레같은 박수를 터뜨리곤 했다.
지금은 도시락이라고 하지만 일제문화의 잔재로 그 땐 ‘벤또’라고 했다. 도시락은 고리버들 등으로 길고 둥굴게 엮어 만든 점심밥을 담는 그릇으로 시골에서 산에 나무하러 갈 때 많이 싸갔다. 알루미늄 제품인 ‘벤또’는 학생들이 학교가면서 그리고 월급쟁이는 직장가면서 점심밥을 싸갔다. 외식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던 때라 주부들이 아침이면 부엌아궁이 가마솥에서 남편과 아이들 ‘벤또’를 겹겹이 쌓아놓고 담는 것이 큰 일과였다. 퇴근길이나 하교길엔 가방이나 책보속의 빈 ‘벤또’ 반찬통이 어쩌다가 뛰기나 하면 딸그락 소릴 내기 일쑤였다.
지금은 도시락이라고 해도 고리버들짝도 아니고 ‘벤또’는 더욱 아니다. 보온밥통에 식수까지 담아가는 첨단 도시락이지만 학생이고 직장인이고 도시락을 싸가는 일은 없다. 학생은 학교나 외부의 급식을 이용하고 직장인들은 대개가 구내식당을 이용한다.
그런데 급식업체의 대형 식중독사고로 많은 학생들이 급식대란을 겪고 있다. 사고의 원인 조사와 더불어 이런 저런 대책을 강구하려면 한 두달은 가야할 모양이다. 다시 보온밥통 도시락이라도 싸가는 학생은 괜찮겠지만 문제는 급식이 끊기면 점심을 굶는 학생들이다. 신파극의 인정가화 ‘검사와 여선생’이 이래서 새삼 생각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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