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철이 와도 못 산다!”고 했다. 아마바둑 얘기다. 상대의 대마를 더는 꼼짝달삭 못하게 잡아놓은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발버둥 칠 때 던지는 회심의 한 마디가 “조남철이 와도 못산다!”는 말이었다. 조남철 9단은 그만큼 한국 바둑의 상징이었다. 국수자릴 10년간 지키기도 했다.
국내 프로 바둑은 조남철-김인-조훈현 시대를 거쳐 이창호 시대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한 땐 조훈현·서봉수·유창혁·이창호 등 ‘바둑4인방’이 나오기도 했다. 지금은 이세돌·최철한·박정상 등 신예가 이창호 시대 후반을 간단없이 위협하고 있다.
조남철 9단은 국내 현대 바둑의 선구자다. 1945년 광복 전후 한성기원설립을 시작으로 오늘의 재단법인 한국기원이 있기까지 외곬 바둑인생으로 일관한 개척자다. 바둑 용어에도 일제 잔재가 남아 예컨대 ‘우떼가시’라고 하던 것을 ‘환격’(還擊)으로 고치는 등 우리말로 바꿨는가 하면, ‘끊으면 뻗으라’는 등 바둑격언을 만들기도 하고 이밖의 무한한 반상 변화에 통설의 이론적 체계를 확립했다.
지금은 입신(入神)이라고 하는 9단 승단이 조훈현의 제1호 9단을 시작으로 꽤나 많지만 20여년 전만 해도 손꼽을 정도였다. 그 무렵 8단이었던 그는 자신이 만든 까다로운 승단 규정을 지켜 20년동안 8단에 머물러 있었다. 후배 9단들이 자동 9단 승단을 수차 주청했으나 규정을 어겨선 안 된다며 끝내 거부하여 한국기원은 할 수 없이 명예 9단으로 추대해 간신히 수락을 받아냈다.
사실상 은퇴 상태였던 때 명예 9단이 된 조남철 9단은 가끔 한국기원에 들러서도 미소만 띤 채 말이 별로 없어 ‘신선’이란 말을 들었다. 노환으로 지난 2일 여든셋을 일기로 세상을 뜬 그가 오늘 9시 서울 삼성병원에서 한국기원장으로 가진 영결식에 이어 선계로 떠났다.
자신과의 싸움이 중요한 바둑의 이치인 것처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스스로를 절제해 보인 분이다. “조남철이 와도 못산다!”고 했던 말은 조남철시대가 지나고도 한참동안 있었다. 바둑의 올드 팬들은 아직도 기억하는 신화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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