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 명절에 고향 갈 때 손목시계를 차면 성공한 사람으로 여겼다. 부잣집에만 대청마루 벽에 괘종시계가 걸렸다. 손목시계는 몇 달치 월급을 모아야 살 수 있었다. 그땐 날짜판이 있으면 고급시계였다. ‘오리엔트’와 ‘시티즌’등 수입한 부품으로 만든 국산 조립시계가 전성기를 이뤘었다.
그런데 전자시계가 나오면서 값이 뚝 떨어졌다. 결혼 예물로 시계가 등장했다. ‘오리엔트 갤럭시’ ‘오메가’ ‘라도’ 등의 브랜드가 나오면서 홍콩산 가짜도 나왔다. 1990년대 초엔 국민소득 상승과 함께 해외 여행객이 증가했다. 롤렉스 등의 명품을 들여 오기 시작했다. 덩달아 모방 제품들이 생겨났다. 롤렉스· 불가리·샤넬의 모방 제품은 꽤 고가였다. 전에는 멀리서 봐도 판별이 됐는데 케이스와 바늘·무게·촉감 등 세심하게 감정해야 할 수준이 됐다.
2000년대에 들어와 ‘가짜 시장’과 ‘진짜 시장’이 따로 존재하기에 이르렀다. 모방 제품에 대한 명품 제조사의 태도도 달라졌다. 예컨대 롤렉스 측은 모방 제품에 대한 단속 의뢰를 안 한다. 가짜에 대한 수요층을 진품에 대한 잠재 수요층으로 보기 때문이다. 정교한 가짜 때문에 피해를 보는 전당포가 속출했다. 별의별 짝퉁이 다 나와 전당포 주인의 ‘고민 1호’는 ‘가짜와의 전쟁’이 됐다. 롤렉스나 카르티에, 프랭크 뮐러, 피아제 등 명품 시계의 모조품은 탄성이 터질 정도다. 전당포의 주인도 속을 만한 수백만원짜리 스위스제 카르티에는 무게도 촉감도, 케이스의 정교함도 진짜다. 그런데 뒷면 뚜껑을 열면 부품에 ‘메이드 인 재팬’이 찍혀 있다. 하지만 가짜를 들고 온 사람들은 태평이다. 미안하다거나 얼굴 붉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답이 똑 같다. “선물 받은 거예요. 저도 몰랐어요”하면 그만이다.
가짜에도 등급이 있다. 중국산은 B급, 홍콩산은 A급, 대만산은 특A급이다. 전당포 주인들이 “야 ~아. 이거 정말 잘 만들었다”고 감탄할 정도다. 진짜와 가짜의 구별법을 가르치는 학원이 없어 시계방에 가서 수백만원의 수업료를 내고 구별법을 배운다. 다이아몬드로 덮인 피아제 시계는 시중값이 1억원이란다. 시계 얘길 하다보니 비싼 것도 아닐텐데 시계를 잡히고 외상술을 먹거나 전당포에 갔던 청년 시절이 그리워진다.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면서 고장 난 시계를 차고 다닌 멋쟁이도 있었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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