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慾(권욕)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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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1612~1645)는 조선 16대 왕 인조(1595~1649)의 장남이다. 동생은 봉림대군(효종)이다. 인조가 1623년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2년 뒤 1625년 14세에 세자로 책봉됐다.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하고 이듬해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하자 세자는 청나라 선양(瀋陽)에 인질로 끌려갔다. 선양에서 소현세자는 청 태종의 명에 따라 사냥에 따라 나서야 했고 명(明)과의 전쟁에 출정해야 했다. 청은 툭하면 트집을 잡아 조선과 세자를 질책했다.

온갖 수모를 겪은 8년간 통한의 볼모생활을 견디고 1645년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맞은 것은 아버지 인조의 냉대였다. 세자 귀국전 인조의 총애를 받던 후궁 조씨는 “청나라가 세자 대신 인조를 인질로 불러들이려 한다”고 모함했다. 이에 인조는 선양에 밀정을 보내 세자를 감시했었다. 인조는 둘째 아들 봉림대군을 후계자로 삼았다.

소현세자는 참으로 불행한 왕의 아들이었다. 귀국 후 두달여만에 34년 짧은 생을 마감했고 처와 자식들도 온전한 생을 다하지 못했다. 세자가 죽은 이듬해 부인 민회빈 강씨가 인조의 수라상에 독을 넣었다는 의심을 받아 사약을 받았고 세 아들 중 원손이었던 석철과 둘째 석린은 유배된 뒤 각각 13살과 9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런데 소현세자는 세자 책봉에서 부터 죽음까지의 20년 세월을 일기로 남겼다. 최근 서울대학교 규장각 연구팀이 완역한 소현세자의 일기는 소현동궁일기(1625~1636·12책), 소현분조일기(1627·4책), 심양일기(1637~1644· 8책), 동궁일기(1645·1책) 등 모두 4종 25책으로 200자 원고지로 2만6천646장 분량이다. 조선왕조실록이 담지 못한 왕세자의 일상사를 중심으로 당시 생활상을 소상히 기록했다. 조선 후기사와 한국학 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되는 소현세자의 일기를 인조가 읽었다면 부자 관계가 그토록 냉혹하지는 않았을텐데 권욕은 참으로 비정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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