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전 ‘미인계’

미국 영주권자인 우엔후창(55)은 월남 패망 때 사이공을 탈출한 보트 피플이다. 그의 베트남인민공화국 반체제 활동은 굳이 여기에 나열할 필요가 있을 것 같진 않다.

주목되는 것은 서울고등법원이 우엔후창을 정치범으로 규정, 베트남인민공화국에의 인도 의무를 배제해 석방케 한 사실이다. 우엔후창은 지난 4월5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한국 경찰에 의해 체포됐었다. 베트남 정부와의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그의 체포를 의뢰받았기 때문이다. 베트남인민공화국 정부는 테러리스트로 지목해 수배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치범은 일반 범죄인과 달라서 인도의 의무가 없다는 것이 서울고법의 판결이다. 법원의 인도 심사는 단심이기 때문에 이번 판결이 곧 확정 판결이다.

흥미로운 것은 우엔후창의 체포 과정이다. 미모의 여인과 함께 있다가 체포된 건 미인계로 보는 것이 그 계통의 관측이다. 이탈리아 국적의 베트남 여인으로 알려졌다. 그녀가 미국에 있는 우엔후창에게 접근, ‘협의할 일이 있는데 미국에서는 곤란하니 한국에서 만나자’고 한 것은 유인했다고 보는 것이 첩보 계통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베트남 정부 사람으로 판단되는 그 여인은 우엔후창이 체포되면서 안개처럼 사라졌다.

흔히 첩보활동의 미인계로 일반에게 정평이 난 것은 영화이긴 하지만 영국 첩보국의 007이다. 007 영화의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 주변엔 이래서 항상 ‘본드걸’이 들끓는다. 007 시리즈 영화는 극적으로 과장되긴 했지만 실제 모델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 특수부대 첩보장교로 눈부신 활동을 펼쳤던 피터 스미스 경이 그 주인공이다. 스미스 경은 지난달 14일 아흔두살을 일기로 타계했다.

‘본드걸’ 같은 미인계는 첩보전에선 필수 요건인 것 같다. 베트남 반체제 인사 우엔후창을 유인한 미인계 역시 같은 양상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도 그 어딘가에서 또 다른 ‘본드걸’의 미인계 암약이 있을 법 하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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