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에 즈음하여

신문 제작은 일일 승부다. 경쟁지와의 승패가 하루하루 당일로 판가름 난다. 하루가 바쁘게 가다보니 일주일이 퍼뜩 간다. 일주일이 퍼뜩 가다보니 한달이 어느 틈에 가곤 한다.

‘당신은 심보가 삐딱하다’는 말을 들었다. 이도 다름 아닌 아내의 말이다. 허구한 날을 날마다 조져대는 글만 쓰다보니 심보가 삐닥해졌다는 것이다. 물론 우스갯 소리지만 일깨우는 점이 없는 게 아니다. 남편의 심성이 행여라도 진짜 삐딱해질까봐 그랬던 것이다.

딴은 상당히 긍정적이다. 일상의 생활에서는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인 면이 많다. 일상생활에선 남들에게 그러면서 신문에 글 쓰는 것은 왜 그리도 부정적이냐는 말을 듣는다.

맡은 소임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조지는 것만이 소임인 것은 아니다. 추켜세우는 것도 소임이다. 사실은 추켜세우는 글을 쓸 때가 조지는 글을 쓸 때보다 더 신바람이 난다. 이래서 추켜세우는 글을 쓰고 싶지만 마음 같지가 않다. 분명한 것은 조지거나 추켜세우거나 글을 쓴다는 것은 어렵다는 사실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머릿속 밑천을 ‘내 함량은 이 정도입니다’하고 벌거숭이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독자가 어떻게 볼건가 하고 항상 두려운 마음을 갖는다. 쓰는 것은 또 머릿속에 든 걸로 쓰지만 세 가지 자세가 있다. 손가락으로 쓰는 것, 머리로만 쓰는 것, 가슴으로 쓰는 것 등이다.

신문 제작에 종사하면서 가장 긍지를 갖는 것은 상대에 위 아래가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막강한 권력자나 길거리에서 노점을 하는 이나 다를 바가 없다. 권력을 두려워해선 안되고 사회적 약자를 소홀히 해서도 안된다. 권력자의 얘길 들으면 사회적 약자의 얘길 들어야 할 것이 또 있다. 권력자는 항시 감시의 대상이다. 권력은 민중의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경기일보 창간 18주년이 되는 생일이다. 한 달이 어느 틈에 간지 모르게 지내다 보니 한 해, 두 해씩 쌓인 게 어느덧 열여덟 살이 됐다. 그동안 고인 애환의 사연이 참 많다. 신문은 독자의 것이다. 격려해주는 것도 좋지만 꾸짖어주는 것도 좋은 관심으로 받아 들인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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