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군에게 낙동강까지 밀린 6·25 한국전쟁을 일거에 역전시킨 것이 유엔군인천상륙작전이다. 상륙작전은 1950년 9월에 이루어졌지만 원래 계획은 10월이었다.
당시 맥아더 유엔군총사령관은 비행기로 공중 정찰을 하면서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것을 보고 인천상륙작전을 앞당겼다고 후일 회고록에서 밝혔다. 들녘의 곡식이 다 익으면 패주하는 인민군의 양도(糧道)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농민들에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치하에서 현물세(現物稅)를 내야 했다. 아닌게 아니라 각 면인민위원회에서 나와 벼 이삭 하나의 낱알이 몇개인 데, 무게는 얼마고, 한 포기엔 이삭이 몇개며, 한 평에는 몇 포기니까 200평 한 마지기에 내야할 현물세가 얼마라는 식으로 산출된 벼가마 할당 수량이 턱없이 많아 소작료보다 훨씬 더 높았다. ‘공산주의 세상이 말 듣기보단 많이 다르다’는 농민들의 소리가 이때 나왔었다. 논 농사만이 아니고 밭농사도 이런 식으로 현물세를 매겼다. 그러니까 현물세를 매겨만 놓고 인천상륙작전바람에 그대로 퇴각했다.
안상수 인천시장 초청으로 온 헨리 하이드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장 일행이 지난 11일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장군 동상에 헌화했다. 그는 “맥아더 동상의 의미를 기억해 달라”면서 “한국은 옛 친구를 버리지 말기 바란다”고 말했다. 16선의 공화당 소속 의원으로 82세다. 오는 11월 정계 은퇴를 앞두고 2차대전 때 맥아더 장군 휘하에서 필리핀 상륙작전에 참가했던 그는 옛 상관에게 생전의 마지막 인사를 한 셈이다.
이른바 북녘 중심의 내재적 접근론자들은 한반도가 통일 안된 것은 맥아더 때문이라며 민족 해악자로 매도한다.
맥아더는 중공군 참전을 예상, 이를 저지키 위한 압록강 넘어 만주 폭격을 주장하다가 전쟁 확산을 우려한 트루만 미국 대통령에 의해 1951년 4월 전격 해임됐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란 건 그뒤 미 의회에서 가진 고별 연설에서 남긴 유명한 말이다.
한국전쟁 당시 적화통일 안된 것을 맥아더 때문이라고 공공연하게 욕해도 되는 이즈엄의 세태가 어디로 가자는 것인 지 정말 두렵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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