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無窮花)가 나라꽃이 된 것은 이 꽃의 속성이 우리의 민족 정신과 닮았기 때문이겠다. 무궁화는 다년생 목본이다. 순간의 아름다움을 택하지 않고, 장대하고 오랜 누림을 값진 값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민족정신과 상통한다. 예부터 우리는 밝고, 맑음 그리고 그것의 근원인 하늘과 태양을 숭앙하는 겨레로 살아왔다. 무궁화의 종류는 많지만 그 중에서도 너른 흰 꽃 바탕에 짙붉은 화심(花心)을 가진 꽃을 특히 사랑했다. 백의를 숭상하는 우리 민족성 때문이겠다.
무궁화가 대개 7월부터 찬바람이 부는 10월 하순까지 계속 필 만큼 화기(花期)가 긴 것도 누대로 견인불발(堅忍不拔)의 정신력을 자랑해 온 우리 민족의 염원과 어울린다. 토질을 떠나 어디다 옮겨 심어도 잘 자라는 특성 역시 은근과 끈기라는 우리 민족성에 맥이 닿는다. 1896년 독립협회가 독립문 주춧돌을 놓으면서 부른 애국가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가사를 담을 만큼 일찌감치 은연중 무궁화는 우리 나라의 대표꽃으로 인식됐다.
무궁화와 우리 민족이 가까운 이유를 밝힌 글도 많다. 시인 조지훈은 “희디 흰 바탕은 이 나라 사람의 깨끗한 마음씨요, 안으로 들어갈수록 연연히 불게 물들어 마침내 그 한복판에서 자줏빛으로 활짝 불타는 이 꽃은 이 나라 사람이 그리워하는 삶”이라고 표현했다. 수필가 이양하는 “무궁화는 흰 무궁화라야 한다. 우리의 선인이 취한 것도 흰 무궁화임에 틀림이 없다.… 흰빛은 우리가 항상 몸에 감는 빛이요, 화심의 빨강은 또 우리의 선인들이 즐겨 쓰던 단청(丹靑)의 빨강이다”라고 했다.
일제 강점기인 1928년 시사월간지 ‘별곤걸’에 실린 ‘조선 산(産)의 하초와 동물’이란 글에서는 “조선 민족을 대표하는 무궁화로 말하면 꽃으로는 개화기가 무궁하다 아니할 수 없을 만치 참으로 장구하며 그 꽃의 형상의 엄연하고 미려하고 정조 있고 결백함은 실로 조선 민족성을 그리어 내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각자 민족을 대표하는 꽃이 있지만 우리를 대표하는 무궁화같이 모양으로나 질로나 적합한 것은 볼 수 없다”고 하였다.
어찌 흰 바탕에 짙붉은 화심을 가진 무궁화뿐이겠는가. 다섯 꽃잎이 항상 한데 피거나 지는 ‘단합과 공생’의 꽃! 무궁화가 그윽하게 피어 있는 8월의 아침이 신선해서 좋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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