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이름을 알린 후 ‘강원도의 힘’ ‘오! 수정’ ‘생활의 발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거쳐 2005년 ‘극장전’까지. 마치 영화 같기도 하고 다큐멘터리 같기도 한 ‘자기만의 영화’를 선보여온 홍상수 감독이 신작을 들고 찾아왔다.
21일 서울 관수동 서울극장에서 첫 선을 보인 ‘해변의 여인’은 홍 감독의 일곱번째 작품이자 고현정의 스크린 데뷔작.
“홍상수 영화, 갈수록 재미있어지네”
코미디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해변의 여인’이 상영되는 내내 관객들은 방긋 미소를 짓기도 하고 박장대소하기도 하다가 영화가 끝나자 박수로 답했다. 전작들에서 보여온 실생활적인 대사나 개성 강한 캐릭터, 가공되지 않은 듯한 상황과 연기들이 주는 강렬한 인상은 유지하면서도 재미와 웃음의 요소가 강해졌기 때문.
이에 대해 홍 감독은 “사람마다 웃는 포인트가 다르다. ‘이 부분에서 웃겨야지, 웃겠지’하고 집게로 집어내듯 의도하지 않았다. 어떤 부분에서 미소를 지을 수도 있고, 어이 없어 웃을 수도 있고, 폭소를 할 수도 있겠지만 웃겨야 한다는 게 제1원칙인 적은 없었다. 다만 우리가 살면서 평소 간과했던 부분을 다시 한 번 쳐다보게 하는 것이 내 영화 목적의 일부분이기는 하다. 그렇게 그냥 흘려보낼 수 있는 것을 잡아낸 부분에서 많이 웃어주신 것 같다”고 밝혔다.
고현정도 “제가 찍었는데도 철 없이 많이 웃으며 봤다. 찍을 때 굉장히 진지하게 찍었는데 보니까 웃긴 부분이 많다. ‘여기서 관객분들이 웃으시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찍지는 않았다. 영화를 보는 동안은 여러분들이 웃는 부분에서 나도 함께 웃어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상황’ 그리고 인간들의 ‘의외성’이 주는 유쾌한 웃음
그렇다고 ‘해변의 여인’이 배우들의 코믹한 대사나 표정에 의해 웃기는 영화는 아니다. 얽혀지는 상황들, 그 상황에 놓여진 인물들의 관계에 의해 웃음이 유발된다.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은 겪었을 곤혹스런 상황, 그 상황을 타개하려는 우리의 몸부림을 스크린에서 확인하며 절로 웃음이 터지는 것.
또 한가지 ‘의외성’도 웃음의 요소로 작용한다. 청순한 이미지의 고현정이 “왜 지랄이야” “제 키 너무 크죠? 잘라버리고 싶어요” 등의 다소 거친 말을 태연스럽게 내뱉을 때 관객들은 크게 웃는다.
홍상수-고현정 ‘윈-윈’
‘해변의 여인’ 시사회에는 여느 시사회보다 많은 언론들이 출동했다. 스타급 배우 고현정의 스크린 데뷔작이기도 하고, 리얼리티 강한 캐릭터를 만들어온 홍상수 감독과 접목됐을 때 고현정이 어떻게 연기 변신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고현정은 홍 감독 영화의 분위기에 녹아내려 김승우 김태우 송선미 등 함께 공연한 배우들과 잘 어우러졌다. 흔히 특유의 작품 세계를 지닌 감독들이 스타배우와 호흡을 맞췄을 때, 감독은 사라지고 스타만 남는 전철을 답습하지 않았다.
고현정은 “첫 영화였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되겠다’하는 계획보다는 감독과 동료배우들을 만나는 게 즐겁고 영화라는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나 보는 게 즐거웠다. 오늘 영화를 보고나니, 내 첫 작품이 홍 감독님의 작품이라는 게 행복하다”며 첫 영화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홍상수 감독이 서울에서 알고지내는 여성과 비슷하게 생긴 외모의 여인을 지방의 한 식당에서 본 후 ‘겉이 비슷하면 속도 비슷할까’라는 의문을 지녔던 경험, 지인이 이틀 간격으로 여행을 떠난 것이 기억에 남았던 일, 그리고 감독이 몇 번 보았던 서해안 서두리 해변이 주는 인상 이 세가지를 영화적으로 합성·변형해 만들었다는 ‘해변의 여인’은 31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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